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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Apr 25. 2024

십 년 만에 대장내시경

오늘 건강검진을 했다. 건강검진이 당연하지 않았던 회사를 다녔던 적도 있다. 건강검진 해주는 회사는 좋은 회사,라는 인식이 박힌 것도 첫 회사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참 열악한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거라 누굴 원망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대장내시경은 꼭 십 년 만이었다. 옛날보단 많이 맛있어졌지만(?) 정결제와 3리터의 물을 마시는 건 역시나 쉽지 않았다. 거의 매일 저녁 반주를 하기 때문에 술을 참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요소였다.


성시경이 한 말을 되새겼다. 자기는 술을 아주 많이 좋아할 뿐이지, 술 안 마신다고 무슨 이상 신호가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은 아니라고. 나도 그렇다! 매일 술을 마시는 루틴이 깨져 좀 어색하긴 했지만(알코올 중독 맞다…), 괜찮았다.


오전 8시에 검진 센터에 도착했다. 세 시간쯤 걸리겠다 싶었는데 11시 30분에 끝났다. 합법적으로 프로포폴을 맞고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했다. 만성표제성 위염은 늘 있는 거고. 십 년 만에 들여다본 대장에는 1.5센티 크기의 용종이 두 개 있다고 했다. 크기가 제법 커서 제거를 못 했다고, 한 달 뒤에 다시 진료를 잡고 입원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구나.


내 순대를 들여다봤으니 순댓국 먹으러 가야지. 내시경 한 날은 죽 먹으라는 검진센터의 권고를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늘 전날 가장 먹고 싶었던, 육덕지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전날 금식과 금주라는 미션을 해낸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해주곤 했다. 삼성역 부근 순댓국집은 인산인해였다. 자리가 없어 나와 같은 혼밥 손님과 합석을 했다.


수많은 직장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순댓국을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 회사 안 가서 너무 좋다! 나도 몰랐던 나의 반려 용종 2개 발견하고, 모처럼 내 쓸모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내일은 회사 가서 뭐 하지. 뭐 하며 시간을 보내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듯이 내일이 되면 내일의 할 일이 생겨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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