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과 이유 Aug 12. 2022

엄마라는 자격증이 없기에

엄마라기엔 너무 부족해

엄마라는 자격증이 있고, 엄마가 되는 수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되는 준비를 하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먹고, 입고, 자는 것 등의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춰진다. 초보 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불안하고 버겁다. 13년 차 워킹맘으로서 이제 적응될 법도 한데 일과 가정을 챙기는데 계속해서 어설프고 불안하다. 첫째 아이를 낳기 하루 전까지 일을 하였고,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에 들어간 바로 다음 날 진통을 느끼고 병원에 입원을 하여 아이를 낳았다. 첫째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직을 하고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의 삶이 시작되었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하였다. 아침에 종종거리며 출근 준비를 했고, 퇴근을 하고 나면 아이와 친정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헐레벌떡 뛰어서 집에 돌아오는 워킹맘의 삶이었다. 빨래 개기와 간단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친정 엄마 덕분에 삼 년 여는 잘 지낼 수 있었다. 바쁜 워킹맘의 삶에 더해 이미 노산이었기에 둘째 아이를 낳아야 되는지 고민이 되었다. 둘째를 낳고 싶었다. 두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이 자꾸 상상이 되면서 둘째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생각만큼 빨리 와주지 않았고, 3년의 터울을 만들어서 둘째 아이가 와주었다. 늦은 나이에 둘째를 임신하고, 먼 거리의 회사를 출퇴근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 출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넘게 더 일찍 출근을 하였고, 업무 시간에 일을 빨리 끝내고, 정시 퇴근을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다 보니 삶이 만만치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모르는 일 투성이고, 회사에서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싶었고, 회사 일도 잘하고 싶었다. 첫째 아이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잘 커 나갔다. 회사에서는 서비스 기획과 콘텐츠 기획을 하는 게 업무였기에 아이들을 위한 서비스 벤치마킹을 일상적으로 해야 되었다. 서비스는 주로 유아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다른 서비스 벤치마킹을 하면서 늘 미래의 나의 아이를 생각했다.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를 위해서 지금 배운 것들을 다 해주리라 다짐을 하면서 미래의 그날을 준비했다. 




늦은 나이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힘겹게 출퇴근을 하던 어느 날 둘째 아이에게만큼은 태교부터 교육까지 직접 아이에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늘 첫째 아이와 친정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직접 가르치고 싶었다. 회사를 위해서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고 서비스 기획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아이를 위한 교육 콘텐츠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임신을 하고 있는 도중에 직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하고, 아이를 위한 일을 하며 엄마의 일도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아이들에게 독서를 지도하는 일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교육 콘텐츠 기획일을 하였기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를 낳기 위해 출산 휴가를 가면서 육아 휴직과 퇴사를 결정했다. 이미 두 번째 직업은 선택했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출발은 괜찮았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것은 나의 책임으로 되었고, 친정 엄마의 도움과 남편의 지원은 줄어들었다. 일부러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친정 엄마 집 근처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남편의 일은 바빠져서 아이의 육아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친정 집과 먼 곳으로 이사한 데다 친정 엄마의 건강 상태도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더 이상 아이를 돌봐 주실 수가 없으셨다. 15년 동안 일만 하였고, 첫째 아이의 육아나 집안의 살림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나에게 새로운 상황이 주어졌다. 24시간 내내 두 아이의 육아와 살림을 책임지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번째 직업을 선택해서 바로 일을 시작하려고 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세 살 터울이고, 둘째 아이이기는 했지만 두 아이를 한꺼번에 돌보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혼자 하려니 처음 육아를 하는 것과 같았다. 둘째 아이는 잘 우는 예민한 아이였다. 바닥에 아이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고 계속 안아 주며 키웠다. 그러는 사이 퇴직금으로 받았던 돈을 생활비로 야금야금 사용하며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직접 아이를 키운다는 행복감도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도 커졌다. 두 번째 직업을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드디어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친정 엄마께서 낮시간에 잠시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일을 하게 되니 적게 버는 돈이라도 보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직업을 바꾸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읽어야 할 책과 배워야 할 내용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떨어졌다. 정말로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잘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한 것처럼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고, 적기 교육을 제대로 시켜 줄 수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두 번째 직업을 선택했지만, 책임감과 부담감에 마음의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엄마라기에는 육아 지식이 부족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따뜻하고 친절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육아 스트레스가 아이에 대한 짜증으로 표현이 되었다.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은 쌓여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두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첫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 배정이 되지 않아서 구에서 운영하는 가정지원센터에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 정도 가야 하는 곳이었다. 운전을 하지 못하기에 아기띠로 둘째 아이를 안고, 아이를 맡기러 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수업 준비를 한 다음에 아이들을 지도했다. 다시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갔다. 


두 번째 직업인 독서교사로 일을 하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외부 생활은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게 우울하기도 했다.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일을 하고 싶었지만, 둘째 아이가 아직 어렸고, 어린이집에 배정이 되지 않았기에 아이를 둘러업고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니 회사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몸은 힘들고, 마음은 우울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놀이터 투어를 하고 온 날이면 짜증이 더 났다. 짜증을 이겨내고 싶었기에 책을 읽었다. 엄마라기에 너무 부족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정관념과 우울한 생각을 떨쳐버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 07화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