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음식 까지는 아닙니다
튀르키예에서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보통 음식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튀르키예 어떤 거 같아?”라는 광범위한 질문에서 누구나 이야기하기 편한 음식이 질문의 주제가 된다. 음식은 잘 맞는지, 한국 음식과 어떻게 다른지 등을 이야기하며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뻗어 나간다.
겨울이 오기 전 어느 날, 남편의 친구들과 아파트 옆 넓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맥주 한 병씩 걸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라서 그날도 어김없이 튀르키예에서 먹어 봐야 할 음식으로 이야기가 시작했다. 친구들은 내게 코코레치(Kokorec)를 먹어봤냐고 물으며 외국인들이 종종 제일 혐오스러운 음식으로 이 음식을 뽑았다고 했다. 조용히 앉아서 술만 마시던 다른 친구도 맞장구를 치며, 먹기 거북한 음식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코코레치가 최애 음식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받아 자기도 코코레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친구까지 지켜보다가, 코코레치가 무슨 음식인지 물어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코코레치? 뭔지 모르겠지만 먹기 혐오스러운 음식이라면… 혹시 바퀴벌레(Cockroach)를 말하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외래어를 굳이 우리나라 말로 바꾸지 않고 쓰듯 튀르키예어에도 영어 단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쓰는 단어들이 많다. 그래서 혹시 발음이 가장 비슷한 바퀴벌레가 아닐까 추리하고 있었다. 다음 질문으로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남들이 경악할만한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의 추측은 반쯤 기정 사실화가 되었다. 남자친구는 캄보디아에서 먹었던 타란툴라 거미와 그 구수했던 육즙을 말했고, 나 역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릴 때 놀이 공원에 가서 먹어본 번데기를 소개했다.
먼저 자리를 파하고 일어나려 하는데 부르사에서 제일 맛있는 코코레치를 파는 분이 곧 공원을 지나갈 거라며 꼭 먹고 가라고 우리를 붙잡았다. 배가 안 고프기도 했고 밤늦게 과식을 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 거절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바퀴벌레를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사코 거절하고 집으로 가는 길, 코코레치의 정체를 알았다. 바로 곱창이었다. 순간의 주저함으로 인해 현지인이 추천하는 최애 양곱창 케밥을 먹어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코코레치는 식당보다는 길거리 푸드트럭에서 먹는 음식이다. 푸드트럭 한쪽에는 꼬챙이에 두툼하게 여러 겹 감겨 있는 양 내장이 구워지고 있다. 주문을 받으면 바게트 빵을 반으로 갈라서 굽기 시작하고, 토마토, 양상추, 양파 등의 채소와 다진 양 내장으로 속을 채워서 준다. 바삭바삭한 바게트와 쫄깃쫄깃한 양곱창의 식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여느 내장 음식이 그러하듯 양곱창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 여러 향신료가 묵직하게 들어가서 잡내를 모두 잡아준다. 맛있긴 한데 좀 짜고 자극적인 맛인가 싶을 때 즈음 토마토, 양상추 등 물기 많은 야채들이 중간중간 씹히면서 맛을 중화해준다. 아직 질리면 안 된다고, 더 먹으라고. 양곱창을 잘게 다져 주기 때문에 이질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곱창의 식감이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타향살이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음식 중 하나가 의외로 곱창이다. 다른 음식들은 어떻게든 요리를 하거나 비슷한 음식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는데, 곱창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 곱창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내장을 그대로 구워서 먹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 살면서 유독 곱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곱창을 향한 그리움을 튀르키예에서는 이 코코레치로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