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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Oct 19. 2023

두유 Duyu 하면 오감으로 듣는 사람을 떠올린다

필명의 유래

매일 아침 여덟 시 즈음 잠 주머니를 찢고 그 사이로 머리를 내밀어 빠져나온다. 스스로 버둥거리며 잠에서 깼을 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작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주머니에 지익- 선을 그려 나를 꺼낸 건 아닐까 의심한다. 내가 아직 눈도 뜨지 않았는데 잠의 천 조각들이 얼기설기 덮여 있는 내 위로 올라와 가슴팍을 지그시 누르며 앉는 고양이들. 살며시 실눈을 뜨면 까맣고 짙은 홍채가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냐아~” 

들켰으니 일어나야 한다. 나만 일어날 수 없다. 잠 주머니를 튼튼하게 여민 남편을 흔들어 깨운다. 

“남편, 우유마 Uyuma!(튀르키예어: 자지 마.) It’s already 8am(영어: 벌써 아침 8시야).”


이렇게 한국어, 튀르키예어, 영어가 섞인 문장은 튀르키예 사람인 남편과 한국 사람인 내가 만나 만들어낸 세상에서 공식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한때 영어보다 내게 익숙했던 외국어인 중국어까지 합세하면 주변 사람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혼종의 문장들이 우리 집에서 쏟아진다. 우리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단어들이 늘어 간다. 언어의 세계가 넓고 깊어지는 건지, 아니면 이상하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각자 쌓아 올린 세계를 흐리며 새로운 의미를 넘나들며 놀뿐이다.


튀르키예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비슷한 발음에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종종 있다. 서로 다르게 연상되는 뜻을 말하다가, 어린아이가 된 마냥 단순하고 지저분한 단어들로 크게 웃곤 한다. 예를 들어, 입맞춤을 귀엽게 이르는 말인 뽀뽀가 튀르키예어로는 엉덩이(popo)를 뜻하고, 아이들의 간식인 까까가 여기서는 똥(kaka)을 뜻한다. 아이들에게 지저분한 물건이라고 만지지 말라고 할 때, “그거 지지야!”라고 말하는 한국과 반대로, 튀르키예에서 지지는 소중한 것(cici)을 의미한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 “우유”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우유”라는 발음을 듣고 냉장고 물통 칸에 있던 우유팩을 떠올렸다. 세모 모양으로 솟은 윗부분을 잡고 양쪽으로 벌리고 앞으로 살짝 힘을 주며 모아서 당기면 열리는 우유팩 모양을 그려냈다. 남편에게 “우유”는 잠이었다. 자는 모습, 이불을 덮고 사지를 기이한 모습으로 널어두고 자는 나, 몸을 둥글게 말고 곤히 자는 고양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입술을 둥글게 앞으로 내밀어 “우유”를 소리 내어 말할 때 우리 집 첫째 고양이를 떠올린다. 

  

우유는 우리에게 자주 말을 건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 등을 보이고 있다가 우리의 눈빛을 느끼고 뒤돌아 볼 때,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지 않을 때 우유는 소리 낸다. 음의 높낮이, 길이, 소리가 다 다르다. 배고프다는 칭얼거림, 입이 궁금할 때 간식을 달라는 요청, 그냥 함께 있고 싶다는 다정한 말, 옷장 위에 올려달라는 시위,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꾸짖음. 우유를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문장들이 우리 집에 떠다닌다.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조탁하고 심금을 울릴 만큼 심미적으로 정제한 문장이 아니어도 감동받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배웠다. 주저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기웃거리게 되는 감정을 느끼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우유를 더 이해하고 싶어 말을 건다. 우유, 자니? Do you우유? 우유에게 말을 걸다가 두유라는 필명이 떠올랐다. 우유와 비슷한 어감인 데다가 우유를 살피며 질문하는 문장의 시작이자, 좋아하는 음료까지 생각나는 단어였다. 우유 친구 두유. Do you로 시작하는 질문으로 우유를 살피며, 우유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은 두유. 


필명을 “두유”로 정했다고 하자, 남편은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았다고 말했다. 두유 duyu는 튀르키예어로 감각을 뜻하며, “듣다.”라는 단어 Duyimak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시각은 눈으로 듣는 감각, 후각은 코로 듣는 감각이라는 의미에서 감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두유” 라면 오감과 그 너머 육감이라고 불리는 추측, 느낌까지 포함한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더 잘 들어줄 것만 같다. 이제 두유라는 말에서 오감으로 듣고 꾸준히 적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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