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다카르에서 보낸 1주
당찬 포부와 꿈을 안고 마침내 출국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Air France를 타고 출발해 프랑스를 잠시 경유했다가 세네갈 수도 다카르 공항에 도착하는 루트였다. 비행시간만 최소 15~16시간 이상 걸렸고 다카르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초저녁 시간대였다. 큰 이민 가방 2개를 찾고 밖으로 나오자 KOICA 직원인 관리요원님을 만날 수 있었고 안내받아 코이카 차량으로 이동했다.
출구 주변엔 세네갈 사람들이 우글우글 에워싸고 있었다. 지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왠지 피부색이 다른 나만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분명 몇 시간 전만 해도 익숙한 한국인만 보다가 갑자기 눈앞에 흑인들로 가득 차 있으니 새삼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날도 점차 어두워지자 그들의 하얀 치아만 도드라져 보여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나 잘 온 거 맞겠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이민 가방 하나가 돌에 걸려 잘 끌리지 않아 말썽을 부렸고 결국 일행과 멀어져 맨 뒤로 처지게 되었는데, 갑자기 몇 명의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서로 캐리어를 끌어주겠다며 매달리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라 적잖게 당황하였지만, 눈치를 보니 약간의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하며 그냥 돌려보냈다. 한국이었으면 절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제야 제3세계인 세네갈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첫 기억은 ‘낯섦’ 그 자체였다.
짐을 무사히 봉고차에 싣고 단원들이 머무는 유숙소로 이동하였다. 도착하니 그날 숙소에 머물고 있던 몇 명의 선배 단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대접받으며 환영식을 했는데,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뒤엔 특별한 일정 없이 짐만 간단히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하루는 굉장히 길었던 것 같다. 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프랑스를 거쳐 다카르에 도착해 다른 단원들을 만나기까지 분명 피곤했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긴긴밤이 되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8주간의 현지적응훈련을 시작했다. 첫 주는 수도에서 지내면서 적응 시간을 가졌는데, 선배 단원과 함께 개인 휴대전화기 구매와 다카르의 주요 시설을 방문했다. 그리고 코이카 소장님, 직원들, 대사님을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처음엔 시차 적응이 잘 안돼서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른 채 그냥 비몽사몽 따라만 다녔다.
오후 시간엔 세네갈 개황 및 주변국 정세, 보건 및 개인위생 등 교육을 받았다. 또한 세네갈에서 필요한 봉사단원증 발급과 재외국민등록을 신청하였다. 수도에서 마지막 날에는 하이라이트인 현지 문화탐방으로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고레섬(Île de Gorée)’을 방문했다.
고레섬은 역사적으로 15~19세기 아프리카 연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예무역의 집결 장소였다.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약 2,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흑인들이 물건처럼 배에 실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은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이었다.
흑인 남성 노예의 가치는 몸무게로 평가받았는데, 최소 기준치인 60kg 미만이면 임시 수용시설에서 콩과 같은 탄수화물을 먹여 억지로 살을 찌웠다고 한다. 젊은 여성 노예들은 가장 비싸게 팔려나갔고 유일한 구원책은 노예 무역상과 성관계를 통해 임신했을 경우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었다. 일부 노예들은 배에 오르기 전 도망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기도 했는데, 대부분 총에 맞아 죽거나 바닷속 상어에게 잡아 먹혔다. 정말 끔찍하고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일들이었다.
섬 안에는 노예 무역상의 저택과 노동을 하던 노예들의 막사가 함께 현존한다. 막사 한 칸의 면적은 가로, 세로 각각 약 2.6m이며 이곳에 15~20명이 목과 팔이 쇠사슬에 묶인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수용되었는데, 그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지낸 것인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훗날 1978년 고레섬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아 강제노역과 위안부로 끌려갔던 아픈 경험이 있기에 이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숭고한 마음으로 추모하며 기도하였다. 아무 이유 없이 팔려나가 이국땅에서 온갖 차별과 모욕을 겪었을 그들이,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고통과 슬픔이 없이 평안하기를, 이 땅 가운데 더 이상 이런 잔인함과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