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를 따뜻한 이국에서 보낸다,
이번 여행의 키포인트였다.
우린 대체로 기념일에 민숭민숭한 편이다.
엠의 성향이 한 몫했다.
이벤트보다는 일상을 선호하는 편.
그래서 이브날에도 어딜 가기보다는 집에서 케이크를 놓고 와인을 마시는 정도였다.
이브날엔 사람도 많고 비싸다는 것도 이유다.
우린 실용적인 가족이다.
그래도 이국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보니 좀 색다른 경험을 고민했다.
먼저 쉐라톤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봤다.
2층 레스토랑에서 진행한다는 크리스마스 파티.
별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렸다.
하지만 결국 따져보면 뷔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도 베트남인걸 생각할 때 상당히 비쌌다.
다음은 쉐라톤 28층의 스카이바.
뷰가 끝내주고 사람도 비교적 적다는 후기를 봤다.
그런데 날이 날이니 만큼 이브날은 별도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나중에 몰래 스카이바까지 올라가 봤는데, 노키즈 존이었다.
입구에 떡하니 노키즈 존 마크가 붙어 있었다.
슬쩍 그 너머로 구경하니 뷰는 끝내줬다.
바에 온 사람들도 드레스 코드에 맞춰 차려입은 편.
우리 같은 설렁설렁한 관광객과는 맞지 않는 곳 같았다.
근처에 스카이라이트라는 루프탑 바도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어디에 가든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생각에 심플하게 롯데마트로.
그 롯데마트가 맞다. 한국에 있는.
이곳 나짱에 진출한 것 같은데, 나짱에선 가장 가볼 만한 마트라는 말을 들었다.
단기 여행이었다면 스킵했을 테지만, 우선 별이 먹을 김이라도 살 겸 롯데마트로 향했다.
짜오마오에서 저녁을 먹고 그랩카를 타고 롯데마트로.
시간은 어느새 저녁 6시 무렵.
나짱 시내에는 정말 대단히 많은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있었다.
특히 오토바이 한 대에 가족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몰려서 탄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신기했다.
베트남은 역동적인 나라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랩카 기사도 만만치 않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이를 쭉쭉 비집고 들어간다.
특히 교차로에선 먼저 머리를 들이미는 사람이 임자.
바로 자동차 머리를 들이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식이다.
앞자리에 앉은 나에겐 꽤 스릴 있는 장면.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저들에겐 일상이겠지만.
그렇게 달려서 드디어 롯데마트로.
입구에 바로 환전을 하는 곳이 있었다.
이곳이 관광지라는 실감이 났다.
환율을 체크하니 쉐라톤보다 좀 안 좋아 보였다.
그래도 돈이 필요해서 우선 100달러만 환전.
구조는 한국의 롯데마트와 비슷했다.
1층에 대단위 푸드코트가 있고, 그 뒤에 식품 매장이, 2층엔 잡화 코너가 있는 구조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정말 대단히 많았다.
베트남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절반씩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간혹 서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많구나.
입이 벌어지는 장면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입구에 옷 가게가 있었다.
우선 별을 카트에 태웠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카트에 태우는 게 편할 것 같았다.
베트남에선 옷이 꽤 싸다는 말이 생각나 대충 구경을 해봤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옷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아동복 코너로 갔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본뜬 옷들이 보였다.
별에게 권했으나, 별의 관심은 이미 모자 코너에서 장난을 치는 쪽으로 향해 있었다.
우선 옷 사는 건 포기.
원래 필요한 옷은 베트남에서 사보자, 는 생각이었지만,
이곳에선 딱히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반팔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버티고 있다.
모자도 가지고 왔지만 쓰기 귀찮아서 대충 다니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도 나와 엠은 쇼핑할 일이 별로 없다.
별이 태어난 후로는 별 위주로 쇼핑을 한다.
아이 옷에 먼저 눈길이 간다.
아이가 입은 걸 보면 만족스럽다.
이런 게 다 부모의 마음인지.
옷가게 안 쪽에 토이저러스가 보였다.
별이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한국 롯데마트에도 있는 최대 규모 장난감 백화점, 토이저러스.
그런데 나짱 롯데마트 토이저러스 매장의 규모는 소박했다.
아직 키즈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걸까.
사실 이곳 매장에도 한국 사람들이 절반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손님이 한국 관광객 인지도 모른다.
상품 구색은 한국 매장과 비슷했다.
여자 아이와 남자아이 코너를 나누고, 다시 나이에 따라 분류한 구조다.
별은 자연스럽게 디즈니 공주 코너로 향했다.
요즘 빠져있는 겨울왕국 2, 이곳에서도 인기인 것 같았다.
수많은 엘사와 안나들이 잔뜩 있었다.
가격을 보니 한국과 비슷한 수준.
이곳 물가를 생각한다면 엘사 인형은 꽤 고가가 아닐까 싶었다.
특이한 옷을 입은 엘사와 안나 인형도 보였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디자인이다.
베트남 스타일일까.
별에게 사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같이 골랐다.
별은 프로즌 2를 기웃거리더니, 금세 다른 장난감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게 갖고 싶다고 그러더니, 바로 마음이 바뀐다.
뭔가를 사고 싶다고 할 때마다, 일단 킵해놓자,라고 말한다.
아이의 마음은 갈대와 같으니까.
그래서인지 별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장난감이 적은 편이다.
적당한 선에 대해선 언제나 고민이 된다.
아미아나에서 터져버린 튜브도 골라봤다.
그런데 이곳에선 의외로 튜브는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스노클링 장비 몇 가지가 보였다.
대신 먹거리 코너가 상당히 넓었다.
2층 대부분도 스낵 코너가 차지하고 있었다.
토이저러스 바로 옆엔 특이한 코너도 있었다.
입구에서 악어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곳, 악어가죽을 파는 곳 같았다.
악어 옆에는 드래곤볼처럼 생긴 거대한 투명 구슬이 있었다.
저것도 돈 받고 파는 건가. 의외로 저런 장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매장 스탭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다른 곳과는 다른 분위기다.
구슬을 쳐다보고 있으니 스탭이 다가오면서 인사를 건넸다.
매장 안에선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마 악어가죽 냄새인 것 같았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만 손님이 없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스탭 외에 안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도 노 땡쓰,라고 말하고 다른 코너로 이동했다.
바로 옆 스낵 코너엔 반대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초콜릿과 과자, 젤리 등을 파는 곳이었다.
별도 몇 가지를 골랐다.
1층 식품 매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별 선물을 사기로 했다.
다시 토이저러스로.
식품 매장보단 사람들이 적어 보였다.
결국 별이 고른 건,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작은 인형.
별은 바로 핑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핑크는 나짱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남은 열흘 동안 별의 친구가 돼줬다.
튜브는 결국 포기했다.
엠은 튜브를 안 팔리가 없다며 혼자 한 바퀴 더 돌아봤지만, 튜브 파는 곳은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향했다.
내려가면서 과자를 고를 수 있는 구조였다.
수많은 베트남 과자들이 손님들을 유혹했다.
나와 별이 과자를 하나씩 골랐다.
내가 고른 건 랍스터가 그려진 과자.
술안주로 골랐다.
1층 매장은 2층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느긋하게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우선 바로 앞에 망고가 보여서 망고를 구경했다.
우리가 아는 노란색 망고가 아니라 대체로 초록색 망고였다.
먹어도 되나 싶었다. 되겠지, 설마. 롯데마트에서 못 먹는 걸 팔까.
그날 저녁에 먹을 망고를 몇 개 골랐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산 김 코너.
김 종류는 상당히 많았다.
이곳에서도 김이 인기인지, 아니면 우리 같은 관광객 대상인지 모르겠다.
검증된 브랜드인 양반김으로 골랐다.
내일부턴 김도 있으니 별도 밥을 잘 먹겠지.
음료도 하나씩 골랐다.
난 베트남 맥주를, 별과 엠은 베트남 음료를 골랐다.
드디어 계산을 하는 곳.
모든 코너에 사람들이 쭉 줄을 늘어서 있었다.
가장 짧아 보이는 줄에 가서 섰다.
한참을 기다려서 계산을 할 수 있었다.
푸드 코트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바로 숙소로 가기로 했다.
그랩카를 부르니 바로 마트 앞에 있는 차가 잡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인 것 같았다.
마트 앞에서 서성이자 그랩 기사가 먼저 우릴 알아봤다.
금방 차를 가져올 테니 기다리라고.
이브날 롯데마트 앞 거리는, 금요일 밤 6시 강남역과 비슷했다.
거기에 오토바이들을 더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사이를 뚫고 그랩카는 유턴을 했다.
오토바이 사이를 차 머리를 밀어 넣고 뚫고 나갔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선 일상인 듯, 다들 당연한 일이라는 표정이었다.
이브 날이어서 그런지, 오토바이엔 유독 가족들이 많아 보였다.
아빠와 엄마가 오토바이 좌석에 타고, 좌석과 핸들 사이에 아이가 서 있는 식이었다.
위험해 보였지만, 저들에겐 삶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이 전부 차를 산다면 대단하겠다, 는 생각도 들었다.
어떨까, 이곳에서 자동차 세일즈를 하면서 산다면.
물론 관광객의 시선과, 실제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은 차이가 나겠지만.
길가에 커다랗게, Happy New Year 2020, 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곧 새해구나.
이국에서 맞는 이브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이브날 거리도 구경할 겸, 쉐라톤 바로 옆 쇼핑몰에서 내렸다.
별의 튜브도 사야 하고. 환율도 체크하기로 했다.
쇼핑몰엔 단체 버스가 가득이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곳 같았다.
입구에 빨간색 장식이 중국 느낌을 줬다.
사람들을 헤치고 우선 환율을 체크했다.
이곳과 롯데마트보다 쉐라톤 환율이 가장 좋았다.
환전은 최대한 쉐라톤에서 하기로 하고, 2층 매장으로 향했다.
2층 의류 코너 중 물놀이 용품점도 있었다.
다행히 튜브도 몇 종류 있었다.
별에게 튜브를 고르도록 했다.
별은 구관조 모양의 튜브를 골랐다.
우리가 가져온 대형 패롯과 한쌍처럼 보일 것 같았다.
여기에도 악어가죽 매장이 크게 있었다.
베트남에선 은근히 인기가 있는 코너 인지도 모르겠다.
튜브를 사고 바로 쇼핑몰을 나왔다.
쇼핑몰 1층엔 KFC를 비롯해, 인스턴트 치킨을 파는 매장과, 고트 커피라는 커피숍이 보였다.
모든 매장에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쉐라톤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너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길을 건너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끊임없이 밀려오는데, 그 사이로 피해서 건너야 한다.
다행히 우리 옆에 어떤 용감한 서양인이 서더니 성큼성큼 길을 건넜다.
우리도 그 옆에 붙어서 건넜다.
눈치 보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이곳 나짱에 거주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길가엔 노점상들이 있었다.
랍스터를 구워서 파는 아줌마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호객행위를 했다.
어차피 사가도 먹기 불편할 것 같았다.
맥주 안주로 반미를 먹고 싶었는데 반미를 파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종업원이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더군다나 롯데마트를 다녀오느라 지쳐버렸다.
그냥 숙소에서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고 자기로 했다.
쉐라톤 로비에도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쉴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홀짝이다 금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