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이날도 새벽에 눈을 떠버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조금 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베란다에 나갔다.
거리는 조용했다.
전날의 왁자지껄한 나짱 시티 전체가 잠든 것 같았다.
멀리 몇 명의 무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찻길을 뛰어서 건넜다.
찻길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짱 거리를 밝히던 헤드라이트 불빛도 꺼졌다.
대신 가로등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스탠드를 켜고 전날 있었던 일을 간단히 베나자에 올렸다.
고수 등급이 멀지 않아 보였다.
목표가 있으니 동기 부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커뮤니티에 글을 쓰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댓글이 몇 개가 달리는지, 조회수가 몇인지 신경이 쓰인다.
다른 사람과 비교도 하게 된다.
저 사람보다 내 글이 낫지 않나, 하는 질투심도 든다.
내가 SNS를 안 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싸이월드 방문자수에 일희일비하던 바보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도 베나자 회원들은 따뜻한 사람들이 대부분 같았다.
대체로 나와 비슷하게 가족들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같았다.
글을 올리고 책을 들었다.
리의별.
미래의 어느 날, 우주 어디선가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이국의 밤에 읽으니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한국과는 멀리 떨어진 어느 방에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리의별은 상당히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그리고 별에서 혼자 살아가는 쓸쓸한 한 남자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엠과 별이 자는 모습을 쳐다봤다.
킹 베드에서 자다 보니 별이 가운데 자게 된다.
별은 잠을 자면서 180도 회전을 한다.
이미 발 한 짝이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다.
우린 아직 집에서 다 함께 잠을 잔다.
대신 집에선 별이 가장 끝에서 잔다.
덕분에 이곳에서 별과 나란히 잠을 자고 있다.
잠시 아이의 발을 조몰락거렸다.
아이의 발은 신기할 정도로 작다.
어느 날 엠과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몇 년이 지나서 별이 찾아왔다.
혼자 살던 나에게 나만의 가족이 생겼다.
나만의 가족. 형제가 없다 보니 더 신기한 기분이다.
가끔 내가 한 가족의 아빠가 됐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잘 모르겠다.
난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의 철없고 이기적인 바보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내가 가족을 이끌고 살 자격이 될까.
한 여자의 남편이,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같이 걸으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삶이라는 여정을 같이 걷는 친구, 우린 그런 인연이 아닐지.
이렇게 생각하면 어깨가 좀 가벼워진다.
서로 손을 잡고 끌어주면 되니까.
내가 앞서서 뭔가를 이끌 필요는 없다.
밖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5시가 조금 넘었다.
밖이 밝아오는 걸 확인하고 책을 덮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