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시내는 이미 오토바이로 가득 차 있었다.
딱 퇴근 시간 무렵이니.
앞자리에 앉아서 거리를 구경하는 건 재밌었다.
오토바이마다 사람들이 가득이다.
혼자 탄 오토바이는 절반.
나머지 절반은 여러 명이 얼기설기 타고 있다.
가족들도 보였다.
아빠 엄마 앞에 아이가 오토바이 앞에 서서 갔다.
위험하진 않을까. 그래도 저들에겐 생활처럼 익숙하겠지.
그나저나 이 사람들이 다들 차를 산다면 대단하겠다.
여기서 기아차 세일즈맨 같은 걸 하면서 살면 어떨까.
매번 하는 공상을 했다.
이날 롯데마트도 붐볐다.
이브날만큼은 아니지만.
저녁은 간단히 롯데마트 푸드코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푸드코트 중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이 눈에 띄었다.
친절한 한글 메뉴가 반겨줬다.
쌀국수, 반쎄오는 물론, 넴느엉까지 있다.
넴느엉은 나짱에 와서 꼭 먹고 싶던 음식이다.
넴느엉 골목이 있다고 들었는데, 좀 허름한 곳이라 가족들과 가도 될지 판단이 안 섰다.
우선 여기서 간단히 맛을 보기로 했다.
결국 세 가지를 시켰다.
가격은 18만 동.
하나에 3천 원 수준이니, 한국의 반값 정도다.
별은 음식이 나오는 동안 바로 옆 보석 코너에 빠져 있었다.
반짝반짝 거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여자아이라서 그럴까.
엠과는 다른 부분이다.
엠도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아이를 비교하게 되나 보다.
난 어땠을까.
학창 시절까진 화려한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취직해서 엠을 만나면서 꾸미는 것에 귀찮아졌다.
엠도 그런 성향이 아니고.
일찍 아저씨가 돼 버렸는지도.
그래도 지금 모습이 편하다.
곧 음식이 나왔다.
이곳 푸드코트는 번호판을 보고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는 구조다.
음식을 먹은 후에도 그냥 놓고 가면 된다.
값싼 인건비 덕분이겠지.
별은 쌀국수를 보더니 인상을 썼다.
한국 쌀국수가 먹고 싶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한 입 후루룩 먹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여기 맛있다, 한국에서 먹던 거랑 똑같아. 띠용!
엠도 먹어보더니 한국에서 먹던 맛이라고 했다.
하하. 드디어 가족 모두 만족하는 나짱 맛집을 찾은 건가.
우리 가족 맛집은 롯데마트 푸드코너였던 걸로.
아무려면 어떤가.
결국 맛집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건 아닌지.
(이 무슨 원효대사 같은 ^^)
반쎄오는 기름이 많아서 좀 느끼했다.
엠과 별, 모두 안 먹겠다고 해서 나 혼자 후루룩.
아, 느끼해.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푸드코트에선 맥주를 팔지 않는 것 같았다.
안에 들어가서 캔맥주 하나를 사 오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곧 넴느엉이 나왔다.
드디어 먹는구나. 감격스러웠다.
나짱 여행을 계획하면서 눈여겨보던 음식이다.
한입 베어 무니, 이건 인기가 없을 수 없는 맛이다.
떡갈비를 꼬치에 끼워서 구운 맛.
고수도 듬뿍 먹었다.
원래 고수는 피하던 식재료지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맛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동남아 음식에선 빠질 수 없는 재료니까.
넴느엉은 꽤 맛있었지만 엠과 별은 안 먹겠다고.
혼자 먹기 아쉬워서 별에게 고기라면서 권했지만 거세게 저항했다.
야, 너 한 입만 먹어보면 완전히 빠져버릴지도 몰라.
구슬려봤지만 싫단다.
결국 둘은 쌀국수를 다 먹더니 먼저 2층으로 올라가서 옷을 구경하겠다고 했다.
혼자 남아 처량하게 넴느엉을 뜯었다.
냠냠. 맛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무슨 상관이람.
서른이 넘어가면서 혼밥에도 익숙해졌다.
음식을 먹고 2층으로 향했다.
2층도 이브날보단 한산했다.
엠은 살만한 옷이 없다며 한탄했다.
그나마 JW에서 모녀 커플 드레스를 구입한 게 다행.
그런데 이 드레스는 예상대로 많은 한국인들이 입는 모양이다.
이날 롯데마트에서도 똑같은 무늬의 커플룩을 입고 지나가는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그쪽 여성분이 깜짝 놀라 우릴 쳐다보더니,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고 재빨리 스쳐갔다.
하하. 재밌는 광경이었다.
별과 약속한 대로 다시 인형 코너로 가서 인형 놀이를 했다.
별은 혼자 이 인형, 저 인형 코너를 기웃거리며 역할 놀이에 빠졌다.
대충 박자를 맞춰주면서 인형을 구경했다.
전체적으로 한국 토이저러스와 비슷해 보였다.
어느 나라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유사한가 보다.
일본 장난감 코너도 비슷했던 기억이다.
역시 겨울왕국이 인기였다.
그런데 피규어를 보니 안나와 원주민 소녀 피규어만 잔뜩 있고, 엘사 피규어는 안 보였다.
엘사가 인기인 건가.
그런데 뒤를 보니 숨겨 있던 엘사 피규어 하나가 보였다.
바로 피규어를 들고 별에게 속삭였다.
별아,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줄까.
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리스마스 선물, 핑크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엘사랑 안나도 있으면 좋잖아.
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엄마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빠가 엄마한테 잘 말해줄게.
눈을 찡긋했다.
결국 엘사와 안나 피규어를 하나씩 골랐다.
크리스마스 선물 2 정도 되려나.
엠도 피규어를 대충 살펴보더니 오케이.
선물을 가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간식을 고르려다 말았다.
지난번 과자와 음료 모두 실패였으니.
맥주도 아직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베트남에선 룸서비스로 주문해도 경제적이다.
결국 안나와 엘사 피규어만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