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조금 긴 여행,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이날도 새벽에 눈을 떴다.
참파의 새벽 풍경을 보고 싶었다.
해가 뜨기 전에 문을 나서니 맞은편 어시장은 벌써 시끌벅적했다.
통통배들의 소리도 시끄러웠다.
활력이 넘친다.
그 광경을 잠시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폰을 열어 전날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정리하다 보니 서서히 해가 뜨고 있었다.
참파 둘레길을 산책하다 방으로 왔다.
오늘은 아침 일찍 포나가르 사원으로 갈 계획이다.
대충 아침을 털어 넣고 길을 나섰다.
포나가르 사원은 참파 아일랜드에서도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섬을 나서서 좌회전을 한 후,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된다.
걸어서 20분 정도 걸릴까?
택시를 탈까 하다가 걷기로 했다.
엠과 별은 숙소에서 수영을 한다고 했다.
나도 나 홀로 산책을 즐겨보기로 했다.
참파 아일랜드를 정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꺾었다.
시간은 9시 남짓이었지만 이미 해는 쨍쨍 떠 있었다.
찻길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매연을 뿜어대고 있었다.
인도는 매우 좁았다.
그마저도 가게들의 짐 때문에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가게로 보이는 곳 앞에 트럭이 서서 우유를 내리고 있었다.
그 옆엔 오토바이 가게가 있었다.
벌써 오토바이를 만지작거리며 손보고 있었다.
이곳의 아침은 빠르다. 실감이 났다.
좀 더 걷다 보니 새들이 가득 있는 가게가 나타났다.
와우, 새를 파는 곳일까.
요즘 별이 빠져있는 앵무새도 있을 것 같았다.
별에게 말해줘야지,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런데 새장이 인도까지 나와있어서 차도까지 내려와서 걸어야 했다.
맞은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오토바이를 피하며 간신히 걸어갔다.
짧은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날은 덥고, 길은 좁고, 매연이 쏟아진다.
아, 역시 이곳에서 도보 여행은 비추다.
드디어 다리가 보였다.
저 다리만 건너면 사원이다.
그런데 다리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 엄청 커다란 누런 개가 늘어져 있었다.
겁이 났다.
목줄은 당연히 없다.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스쳐갔다.
얼핏 보니 걸음마를 갓 뗀 아이가 개 옆에서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다.
괜찮은 건지.
하긴 우리도 예전엔 저런 식으로 동네 개들과 어울려 살았을 것이다..
다행히 개는 나를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관심을 잃은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는 과정도 고행이었다.
알리바바를 주의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폰은 주머니에 꼭 넣어뒀다.
설마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망상에 빠져들었다.
맞은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멘 서양인 커플이 땀을 줄줄 흘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길이 좁아서 서로 비켜야 했다.
하지만 커플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지나더니, 쉣, 이라고 내뱉었다.
뭐야, 저 사람들.
아무리 덥더라도.
짜증은 났지만 나도 더위에 지쳤다.
걷다 보니 드디어 사원 입구가 보였다.
사원 앞은 시장 바닥이었다.
중국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서 모여 있었다.
그 중간에 서양인 관광객들이 넋을 놓고 서 있었다.
한쪽에선 베트남 상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아, 시끄러워.
재빨리 매표소로 갔다.
돈을 내고 티켓을 받았다.
우리 돈 천 원 정도.
찻길 맞은편을 보니 버스들이 쭉 서 있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인가 보다, 이곳은.
하긴 나짱에서 단체객들이 찾을 만한 곳이 별로 없을 테니.
정문으로 들어가 사원을 올려다봤다.
우와, 사진으로만 보이던 그 모습이다.
빨간색 돌로 지은 사원.
웅장해 보였다.
계단을 올라 사원 가까이 다가갔다.
포나가르 사원은 커다란 사원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작은 사원도 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사원 앞에 손님들이 쭉 줄을 서 있었다.
다들 긴 회색옷을 하나씩 걸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원 바로 옆에서 빌려주는 모양이었다.
사원에 들어갈 때 예를 갖추는 것이다.
나도 줄을 서서 들어갔다.
입구를 통과하니 부처님을 모신 조그마한 공간이 보였다.
그 앞에서 공손히 예를 갖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남은 여행 건강하게 마무리하게 도와주세요.
부처님 상을 한 바퀴 돌아봤다.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까맣게 변한 걸 보니 이곳의 세월이 느껴졌다.
사원을 나오니 뒤편에서 공연을 하는 광장이 보였다.
작은 악기들로 연주를 하고, 그 앞에서 소녀들이 춤을 춘다.
부처님께 바치는 춤일까.
우리나라의 사원과는 다른 분위기다.
그 옆에 음료수를 파는 작은 매점을 둘러봤다.
딸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뒤에서 머리를 묶어주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나에겐 부처님보다 더 경건한 장면이었다.
아무리 시끄러운 공간이라도 공부를 하는 어린 딸,
그리고 그 옆에서 머리를 묶어주는 엄마.
우리 집에서도 종종 보는 엠과 별의 모습이다.
결국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거겠지.
사원 뒤편엔 나무들도 있었다.
무언가를 태우는 공간 위에 우뚝 솟은 나무가 눈에 띄었다.
캄보디아 사원에서 본 나무처럼 바위 사이까지 뿌리를 길게 뻗어있다.
대단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옆으로 빛이 들어와서 더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나무 뒤편 계단을 내려가면 사옥 같은 곳이 있었다.
스님들이 지내시는 곳일까.
시끄러운 사원과는 동떨어진 조용한 곳이었다.
사실 포나가르 사원은 상당히 작은 규모다.
둘러보면서 사진 몇 장을 찍으면 끝.
더군다나 산책 겸 혼자 길을 나선 난, 그곳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자, 이제 먼 곳으로 이동한다.
숙소로 돌아가자.
사원을 빠져나왔다.
사원 앞은 여전히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런데 구석에서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이 보였다.
코코아에 빨대를 꽂아서 파는 상인이었다.
사람들은 더위에 홀린 듯 코코아를 하나씩 받아 갔다.
저런 곳이 알짜이지 않을까.
더워서 저절로 지갑을 열게 된다.
난 코코아는 별로지만, 대신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땡겼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기로 하고 둘러보기로 했다.
사원 주변은 번화가답게 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옷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MLB에선 절대 안 만들 것 같은, 각종 MLB 의류들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노란색 티셔츠에 NY 로고가 크게 들어간 건 제법 멋있어 보였다.
주인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베트남 말로 설명을 했다.
못 알아듣는다는 제스처를 하니 웃으시더니 계산기를 꺼내든다.
자연스럽게 가게를 구경하게 됐다.
좁은 가게 안에 각종 의류와 액세서리가 가득이었다.
특히 명품 브랜드들이 잔뜩 있었다.
어제 결혼식 장에 왔던 하객들도 이런 걸 걸쳤겠지. 하하.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이나 해줄까, 하는 마음에 구경을 했다.
명품 벨트가 보였다.
한국돈 만 오천 원 정도.
일단 나중에 사기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아주머니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맞은편에 카페로 보이는 곳이 보였지만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도로를 뚫고 지나갈 자신이 없어서 가게 옆 골목길로 들어섰다.
카페로 보이는 곳이 있었지만, 그 안은 컴컴했다.
들어서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어쩔까, 하다가 골목길로 더 들어섰다.
골목길은 주택가인지 조용했다.
멀리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몰려다닌다.
나짱 학교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골목길을 구경하다 보니 다시 커다란 찻길로 나왔다.
포기하자, 카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왔던 길을 돌아왔다.
짝통을 파는 옷가게를 지나, 다시 포나가르 사원까지 왔다.
아까보다 사람들은 더 많아 보였다.
질려버린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지나쳤다.
돌아오는 길 다리 건너기는 더 힘들었다.
태양이 직사광선으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체감상 한참 걸은 것 같은 기분으로 간신히 참파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엠과 별이 보이지 않아 카카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방에 가서 드러누웠다.
잠시 까무룩 정신을 잃다 보니 별과 엠이 나타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근처에서 산책을 했다고.
좀 더 쉬다가 짐을 챙겨서 방을 나섰다.
이제 멀리 이동한다.
독렛 비치.
그리고 나짱 여행도 절반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