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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도 괜찮아, 우린 충분히 좋았으니까

by 방송과 글 사이

7년 전, 내게 미니멀 라이프라는 멋진 삶의 방식을 전수해 준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파주에 있는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갔을 때, 아쉬운 마음이 컸었다. 내가 사는 고양시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 멋진 3층 집이 좋아서 자주 찾아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친구가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빠졌다.


“이번 주에 한번 보자, 내가 갈게!”

“미안. 이번 주는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다음 주도 힘들 것 같은데...”


한 번, 두 번 이렇게 연락이 미뤄지더니 어느 순간 내가 보낸 카톡에 답장 오는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조르지 않으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연락이 없었다. 진짜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싶어 많이 속상했다.




비슷한 일이 3년 전에도 있었다. 우리 가족과 아이들까지 모두 친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우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했던 친구네가 하남으로 떠났다. 이사 가던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펑펑 울던 그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이렇게 멀리 떨어지면 자주 못 볼 텐데...”

“그러니까, 아이들 어쩌나...”


우리집 아이와 친구네 첫째는 세 살 때부터 늘 함께 놀던 절친이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 해서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났지만, 바쁜 친구네 부부 일정과 우리 일정이 겹치다 보니 예전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처음 겪었던 친구와의 멀어짐보다는 이번엔 덜 힘들었다. 다들 바쁘게 사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덕분일지도 모른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친밀감이 높아지고, 멀어질수록 관계의 빈도와 깊이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환경이 심리적 연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멀리 떠나는 일은 정말이지 가족과 헤어지는 것만큼이나 아프다. 괜히 옛말에 이웃사촌이라고 했을까. 가깝게 살면서 매일 서로의 삶을 공유하던 시간이 소중했던 만큼 아쉬운 마음이 너무 컸다. 친구의 이사를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이사를 하더라도 서로 가끔 연락하고 지낼 수 있으면 좋고,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냥 마음으로 잘되길 빌어주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어느 날, 우리 아이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솔이 프사(프로필 사진) 보니까 나보다 더 친한 친구가 생겼나 봐.”


아이 표정이 너무 서운하고 속상해 보였다. 사실 나 역시 아이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고 부인하진 못하겠다. 친구네 가족과 집을 트고 살았던 사이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전히 가장 친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 관계를 소유할 수는 없으니까.


심리학자 아론(Aaron)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관계를 ‘소유’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와 헤어짐을 받아들일 때 진정으로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꾸마야. 친구 관계라는 게 원래 그런 거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걔가 다른 친구랑 친해졌다고 해서 너를 싫어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어.”

“그래도 점점 멀어지는 건 너무 싫어. 엄마, 너무 힘들어.”


아이를 안아주고 위로하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헤어짐을 겪으면서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매번 어렵고, 싫고, 힘들지만 이렇게 헤어짐과 멀어짐을 경험하면서 나도, 우리 아이도, 조금씩 관계를 맺는 법을 진정으로 배우고 있다. 멀어져도 괜찮다. 우린 충분히 좋았고,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더 좋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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