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내일 단톡방에 공지 이렇게 올리면 될까요?”
오늘도 아이 합창단 공지 내용을 미리 회장님께 보냈다. 잠시 뒤 카톡 알림이 울렸다. 메시지를 열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지난번에 수정 사항이 제대로 반영이 안 됐더라고요. 꼼꼼하게 확인 부탁드릴게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나도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벌써 20년. 어째서 아이 합창단 학부모회 서기 일을 하면서 마치 사회 초년생처럼 자꾸만 혼나는 기분이 들까?
“죄송해요, 제가 다시 확인해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나는 메시지를 급히 보내고,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있던 딸이 묻는다.
“엄마, 왜 또 그래?”
“회장님한테 또 혼났어. 공지 사항 제대로 수정 안 했다고...”
“엄마, 회장님도 잘해보자고 그런 것 같은데?”
“속상해서 그렇지.”
“엄마, 장원영처럼 럭키 비키!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엄마가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야.”
이깟 일로 괴로워하는 내가 싫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실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일할 때는 오탈자 하나라도 있을까 봐 수없이 확인하는 나인데, 학부모 단톡방 공지에는 한두 번 쓱 보고 끝냈다. 어차피 중간에 회장님이 한 번 더 봐줄 테니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분명히 있었다.
이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책임 분산 효과’에 해당한다.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덜 민감하게 느끼고 행동의 질이 떨어지기 쉽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 검토해 줄 거라는 생각에 내 책임감을 무의식 중에 내려놓은 것이다.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회장님한테 지적받았어. 이게 뭐라고 자꾸만 속상하지?”
“너 지금 하는 일도 많고 힘든데, 학부모 임원까지 맡아서 그래. 너 또 완벽해지려고 했지? 작은 지적 하나라도 받으면 못 견디잖아.”
친구 말이 정확했다. 누군가 내 실수를 꼬집는 게 너무 싫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남이 들춰내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채고 고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자존심이 지켜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자꾸 완벽해지려고 하니까, 작은 지적에도 흔들리고 무너졌다. 좌절감만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완벽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실수 하나에도 쉽게 좌절하고, 남이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차려야 안심이 되는 성격이었다. 실수 = 무능력처럼 느껴졌고, 지적 = 존재 자체에 대한 비판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제로 ‘지적에 대한 민감성’은 자신감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자기 기대치가 높기에, 작은 실패에도 더 큰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더는 그러지 말자. 뭔가 지적하면 받아들이고 바로잡으면 되잖아.’
시원시원하지 못한 내가 아이 말마따나 럭키 비키로 시원스럽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 자신을 다독였다. 회장님의 지적이 나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증거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그동안 누군가 내 불찰을 꼬집으면 자존심 상하고 위축되던 내가 이제는 지적조차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지적 하나가 내 정체성까지 흔들게 놔둘 수는 없다. 내 마음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오늘도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회장님 지적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