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환영받지 않아도, 나는 나답게 서 있기로 했다

by 방송과 글 사이

“작가님, 한동안은 전임자랑 격주로 나눠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팀장의 전화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지난번 녹화 때 전임자가 이제 바쁘지 않은데 왜 그만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결국 이런 결론인가.


팀장은 내 원고에 의욕이 과하게 들어가 있다며 아직 완전히 내게 일을 맡기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팀장의 전화를 끊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내 안에 숱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넌 아직 혼자서는 부족해.’

‘기존 작가보다 많이 튄다.’

‘그래서 아직은 아니야.’


잘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자꾸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렸다. 나는 지금 또, 환영받지 못한 자리에 있는 걸까.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오지 말았어야 할 곳에 내가 와버린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명시적인 거절이 없었는데도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감정을 ‘내면화된 배제감’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타인의 미묘한 말과 태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불편함을 주는 것처럼 느끼는 심리다. 특히 “의욕이 과했다”라는 말은 나의 노력과 열정을 ‘과잉’으로 규정하고, 존재 자체를 ‘부담’으로 만들어버리는 언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는 자기 비난이 쉽게 일어난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Dr. Kristin Neff)는 이러한 자기 비난은 자존감을 갉아먹고, 자기 연민의 결핍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자리에 들어간 사람일수록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나?’라는 자격 의심을 느끼기 쉽다. 특히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실수하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연구도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문제였다’라는 생각을 비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연습이다.


‘나는 이 자리에 있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고, 지금도 더 나아지려고 하는 중이야.’

‘내가 이 자리를 온전히 채우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오늘 나는 다시 마음을 정리한다. 이 자리가 아직 불편하고, 누군가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해도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온 게 아니다. 내가 문을 두드렸고, 누군가가 ‘들어오라’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예의 바르게 앉아, 조심스럽게 나의 방식대로 해보는 중이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나는 이 자리에 천천히, 나답게 적응할 것이다. 작지만 분명한 내 걸음으로. 마음이 잠깐 내려앉는 날이지만, 오늘은 무너지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내일도.

keyword
이전 24화감사를 잃으면 모든 것이 버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