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어렵게 들어가 예술인 심리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예술 활동 중 겪는 정서적 어려움을 전문 상담으로 예방하고, 마음 건강을 지키자는 취지에 나도 용기를 냈다. TCI, MMPI, 문장완성검사까지 받았다. 검사 결과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1000명 중에 1등으로 우울하다.’
‘강박 성향이 매우 높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숫자로 확인하는 건 예상보다 더 아팠다. 나는 자신을 쾌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께 되물었다.
“저… 우울해 보여요?”
“겉으로 보이는 밝음과 내면의 곪아가는 부분은 다를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내 마음 상태를 모르고 지내면 괜찮았을 텐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담을 받으며 나는 조금씩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도, 상담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상담의 본질을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이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괜찮아.”라고 자신을 속이며 버텼다.
“저 정말 힘들어요.”
“이건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상담실에서는 솔직하게 말하게 됐다. 그 순간, 억눌렀던 감정의 무게가 조금 내려갔다. 칼 로저스가 말한 것처럼, 진짜 성장의 시작은 내 상처와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이번에 개인 상담 네 번째. 늘 상담실 문을 두드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 상담 목표는 상담 없이도 내 힘으로 설 수 있는 내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회(APA)의 연구에 따르면, 상담에서 배운 대처 방법과 자기 인식 습관은 상담이 끝난 후에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스로 회복하는 힘, 즉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키워준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나는 문제만 생기면 혼자 끙끙 앓다 무너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럴 땐 내가 예전에 배운 방법으로 풀어보자!” 하며 조금씩 자신을 다독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남은 10회기 상담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상담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상담실 문을 두드린 그 순간이 이미 내 첫 번째 성장이었다. 앞으로도 흔들릴 때마다 나는 이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내 안에 나를 지탱하는 힘이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