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고, 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주변 사람들은 자꾸 물었다.
“20년이나 방송작가로 일했으면 글은 지겹게 썼을 텐데, 굳이 100일 글쓰기를 왜 하는 거야?”
그때마다 난 똑같이 답했다.
“그동안은 다 원고료 받고 쓴 글이었어. 이제는 진짜 내 글을 써보고 싶었어.”
조금은 비장한 마음과는 달리 내 글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지 걱정부터 앞섰다.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 첫날부터 막막했다. 매일매일 허덕이며 글을 썼다. 심리학에서는 어떤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신경과학자인 필립 랠리(Phillippa Lally)는 66일 동안 꾸준히 반복한 행동은 두려움이나 부담이 점점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이 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정말 신기하게도 66일쯤 지나자, 글쓰기가 덜 힘들었다. 점차 두렵지 않고,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100일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썼다. 남편, 아이, 우리 집 고양이 얘기부터 습관을 바꾸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잊고 있던 상처들과 그 치유의 과정까지 사소한 일상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솔직히 써 내려갔다. 글을 쓰는 과정은 나를 치유하는 과정과 다름없었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너베이커(James Pennebaker)의 연구를 보면, 자신의 감정과 스트레스를 솔직하게 글로 표현하는 행위는 정서적 회복과 스트레스 해소, 자기 이해를 크게 돕는다고 한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며 마음이 정리되고 위로받았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뭘 쓰지?’
이 질문은 100일 글쓰기 내내 내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처음엔 남편이나 아이, 고양이에게서 갈등이 생기길 내심 바랐다. 작은 다툼이라도 생기면 ‘아, 이걸로 오늘 글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문학 이론에서도 갈등은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갈등은 이야기에서 인물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고, 드라마나 소설의 핵심 줄기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그렇다고 매일 남편과 싸우고, 아이에게 짜증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 억지로 끌어낸 갈등은 진짜 내 삶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70일이 지났을 무렵, 비로소 가닥이 잡혔다. 나는 7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게 되었고, 그 선택은 내 일상을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삶으로 바꾸어놓았다. 물건만 줄인 게 아니라, 생각, 관계, 선택까지도 덜어내며 나를 지키는 삶을 살고자 부단히 애썼다. 내 에세이 제목은 ≪가볍게, 나답게≫가 되었다. 갈등 대신 ‘내가 지켜온 삶’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100일 글쓰기를 완주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100일 글쓰기를 해낸 내가 뭔들 못할까 싶었다. 내 안에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100일 동안 나날이 글을 쓰고 성장해 온 덕분일까. 나는 글쓰기 외에도 더 많은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기존의 공중파 시사, 교양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새롭게 기독교 방송까지 맡게 되었다. 교회에선 16주간 일대일 양육자반 과정을 훈련받으며 내 영성도 깊어졌다.
사실 나는 예기불안이 심한 사람이다. 예기불안은 자기가 실패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평범한 일상적 행위를 할 때 한 번 실패했던 일이 연상되어 또다시 실패를 예감하고 불안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두려워하고 걱정부터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100일 글쓰기를 하면서 그 예기불안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법을 배웠다. 처음 글을 쓰던 날의 그 막막함을 돌파했던 것처럼 이제 다른 일을 할 때도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그 불안감을 이겨낼 힘이 내 안에 생겼다.
당시 남편에게 100일 글쓰기가 끝난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남편이 능청스레 말했다.
“우리 와이프 이제 사람 되겠네~”
“그래, 맨날 머릿속으로만 내 글을 쓰겠다고 뒹굴뒹굴하던 곰이 이제 진짜 내 글을 쓰는 사람이 됐네.”
나는 혼자였으면 100일 글쓰기 완주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함께 했던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했던 작은 선택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하루에 하나라도 비우기, 내가 나에게 선물하기, 매일 영어 한 문장씩 외우기, 도서관으로 출근하기 등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내 일상이 바뀌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나비효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론처럼, 아주 사소한 선택이 예상치 못한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개념이다. 나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크고 화려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조금 더 나답게 살기 위해 했던 작은 실천들이 내 삶을 바꾸고, 결국 매일 글을 쓰는 나를 만들었다.
하루하루 쓴 글이 평범한 일상에 ‘의미’라는 숨을 불어넣어줬다. 문득 영화 <어바웃 타임>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마지막엔 과거를 바꾸지 않고 현재의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낸다. 그 영화를 보고 느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다르게 살아낼 수 있겠다 싶었다.
비록 망치고,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다르다. 가수들이 원곡자의 노래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다시 부르듯이, 나도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다시 쓰고 있다. 아이의 말 한마디, 침대 밑에 숨은 고양이, 왕복 3시간 출퇴근길조차도 다 내 글감이 된다.
지난 100일은 그저 글을 쓴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만난 시간이었다. 나는 내 안에 이렇게 단단하고 성장할 능력이 숨어 있었는지 내 글을 쓰기 전엔 몰랐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믿는 이 힘으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 내 속도를 지키며, 매일, 나만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길이 어디로 가든, 나는 나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오늘도 가볍게, 나답게 내 글을 쓰고, 나를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