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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앱을 지우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by 방송과 글 사이

“엄마, 주식 또 떨어졌어?”


내가 평소보다 부쩍 예민해지면 아이는 어김없이 내게 이렇게 물어본다. 코로나 블루로 은둔 생활이 길어졌을 무렵,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 끝에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나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주식 창만 들여다봤다. 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았다가, 주가가 내려가면 침울해지기를 반복했다. 정말 하루하루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각종 관세 정책이 쏟아지면서 미국 증시가 들썩였다. 나도 덩달아 흔들렸다. 떨어지는 주가를 보면서 내 손가락은 매도 버튼 근처에서 맴돌았다. '이러다 다시 오르겠지.' 계속 미련을 붙잡고 주식 창만 들여다봤다. 내 일상에도 큰 영향을 줬다. 주식 하나 때문에 하루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게 너무나 싫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사람이 같은 양의 이익보다 같은 양의 손실에서 2배 이상의 고통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걸 ‘손실 회피성’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딱 그랬다. 조금 수익 날 땐 잠깐 기분 좋고, 조금만 떨어져도 하루 종일 기운이 빠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실시간 데이터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불안과 무기력이 증가하고, 일상 집중력이 저하된다고 한다.



내게 주식은 투자가 아니었다. 감정 소모 그 자체였다. 이대로 내 삶이 점점 더 불안해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주식 앱을 아예 지워버리자고.


‘회사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당장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가치 투자를 했으니 믿고 기다려보자.’

이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거리두기(cognitive distancing)’의 대표적인 실천이었다. 주식 앱을 지운 덕분에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다. 매일 주식 창을 보는 대신, 돈 공부 책을 읽거나 경제 강의를 들었다. 물론 아직 마음속 불안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일희일비가 아니라 믿고 기다리는 힘이라는 걸.

아이가 다시 묻는다.


“엄마, 요즘은 주식 안 봐?”

“주식 앱 아예 지워버렸어.”

“우리 엄마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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