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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by 방송과 글 사이

“엄마, 선물 받았어.”

“생일도 아닌데 누가 선물을 줬어?”

“내가 줬지.”


핑크빛 택배 포장지를 열어보며 해맑게 웃는 초6 딸. 하마터면 다른 사람한테 선물 받았다고 속을 뻔했다. 어떻게 자기한테 선물할 생각까지 했을까? 손수 포장까지 해서 뜯어본들 진짜 선물 받는 느낌이 들까?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잠시, 자신에게 받은 선물을 안고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내가 나한테 선물을 할 수 있구나.’ 묘하게 설득당했다.




며칠 뒤, 혼자 쇼핑몰에 갔다. 모처럼 옷을 사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계속 고르다 지쳐버렸고 집에 가려고 했던 그때, 한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디퓨저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갈까? 이런 건 나한테 꼭 필요하지도 않잖아.’

‘아니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좋은 향이 나면 기분 좋을 것 같아.’

‘나한테 좋은 걸 허락하자. 이건 나를 위한 선물이야.’


망설이다가 마음을 굳히고 계산대로 향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소비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 선반 위에 디퓨저를 뒀다. 집으로 들어왔을 때 나를 반기는 이 향기, 이 기분. 내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실제로 미국 심리학회(APA)는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보상을 주는 행위가 자기 효능감(self-efficacy)과 동기, 그리고 심리적 안정감 향상에 기여한다고 보고했다. 특히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은 외부 평가가 아닌 자기 인정의 형태로, 자존감을 건강하게 높이고 삶에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나 100일 글쓰기 완주하면, 나한테 가방을 선물할 거야. 매일 기분 좋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걸로.”


어느 날 남편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남편은 별 반응 없이 그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남편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서운했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내가 나를 인정해 주면 되니까.


오늘은 글쓰기 80일째. 아직 20일이 남아 있지만, 매일매일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내 안에 뿌듯함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100일째 되는 날, 나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다짐한다. 이제는 안다. 가장 소중한 선물은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고, 내가 나에게 건네는 진심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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