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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by 방송과 글 사이

예전의 나는 교회 소그룹 모임이든, 친구들과의 커피 한잔 하는 자리이든 속에 있는 얘기를 다 꺼내야 직성이 풀렸다. 어린 시절 상처부터 내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까지. 다 쏟아냈으니 좀 가벼워졌나 했다. 하지만 ‘아, 왜 그 얘기까지 했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진 않았을까?’ 어김없이 이불 킥을 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은 이런 경험을 ‘취약성 후회(Vulnerability Hangover)’라 부른다. 감정적으로 많이 드러낸 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불안해하고 자책하게 되는 현상이다.


다 털어놓아야 진짜 관계가 만들어질 거라 믿었다. 나는 내면의 이야기를 다 말했는데 친구는 나처럼 얘기하지 않으면 서운하기까지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이만큼 얘기했으니, 너도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강요 아닌 강요도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이라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드러냈기 때문에 상대도 나와 같은 수준으로 느끼고 공유할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교회에서 일대일 양육자반 교육을 받는 중에 강사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다.


“조별 나눔 전에 꼭 기억하세요. 자신이 나눌 수 있을 만큼만 이야기하세요. 수치심이 들 만큼 무리해서 꺼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동안 나는 진짜 친밀해지려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걸 숨김없이 말해야 하는 줄 알았다. 장로님 말씀처럼 굳이 100% 내 속을 드러내놓지 않아도 됐다. 건강한 관계에는 ‘심리적 경계(Psychological Boundaries)’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경계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자기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거리다. 브레네 브라운은 ‘과잉 노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적인 솔직함은 친밀감을 만들지 않는다. 적절한 경계 없이 하는 깊은 고백은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수치심을 남긴다.”




몇 년 전, 우울증이 심했던 시절, 누굴 만나도 내 불안과 우울함을 토로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다 털어놓으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내 속을 드러낸 이후 마음이 점점 더 불편했다. 내가 쏟아냈던 얘기를 다시 곱씹으며 후회와 수치심에 잠 못 이뤘다.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은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이도 같이 지치고 있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굳이 나를 다 보이지 않는다. 누가 나를 깊이 이해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친구와 함께 너무 불편한 감정을 애써 나누지 않고, 설사 내 속사정에 호응해 주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지나간다. 이제는 안다. 속속들이 안다고 다 친해지는 게 아니라, 조금 덜 말해도 끈끈한 관계는 가능하다는 걸. 그렇게 내가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워간다. 나누고 싶은 만큼만 나누고,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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