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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Apr 30. 2020

고추냉이 같은 결혼

여자 셋과 사는 남자 이야기-4

 결혼이라는 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유지되고 지켜져 왔던, 제도이다. 지금이야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사실 몇십 년 전만 해도 부모나 친척들이 해주는 중매를 통해서 결혼했다. 나 역시 중매를 통해 결혼한 커플의 아이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고서 어찌나 맘에 들어했는지, 밭에서 일하고 있는 외할아버지께 절을 했다는 레전설이 존재한다. 중매를 통해서 결혼하는 것은 좀 세속적이라고 보일지라도 의외로 잘 사는 커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의 이혼율이 더 적다고 하니, 꼭 사람을 자세히 알아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남녀들에게는 안 그런 척하더라도 결혼에 대한 엄청난 환상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환상은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서 그들에게 심어진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꼭 '프러포즈'를 해야 한다는 공식은 어디서부터 생겨난 걸까? 결국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 안에 알게 모르게 심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환상을 채우기 위해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 화려한 예식 혹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예식, 그리고 좋은 신혼여행의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스타그램이나 SNS를 통해서 환상적인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찾는 것에 시간과 공을 드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난 결혼을 교회에서 했다. 그 교회 전도사라 어쩔 수 없이 했다. 웨딩 플래너를 섭외하고, 스드메가 한꺼번에 묶인 것이 아니라서 일일이 선택하는데 참..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겨우겨우 마무리될 무렵, 교회 결혼식을 관리하시는 집사님에 액자를 거치할 이젤과 예식 장갑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혼식 전날 밤 아내와 치킨을 뜯고 있었는데... 밤 9시쯤 그 집사님에게 전화가 와서 이젤과 장갑이 준비 안됐다고 알아서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고 얼마나 열이 받던지... 그다음부터 교회에서 결혼하려는 사람에게 비추를 남발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당시 교회 담임목사님의 주례가 어찌나 길던지, 아내는 힘들어서 옆에서 휘청거리고 나는 아내가 쓰러질까 봐 긴장 백배를 하고 있었다. 결국엔 주례 말씀이 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척들은 주례가 너무 길다고 뒤로 욕을 해댔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식당으로 내려가니 이미 뷔페는 음식이 거의 다 없어서 먹을 게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때 생각했다.


'두 번은 결혼 못하겠다.'


 태국 푸껫으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나에게는 좋은 기억이 되질 않았다. 사실 여행 가이드도 맘에 들지 않았고(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댐), 3 커플 정도가 같이 다녔는데, 한 커플이 계속해서 싸우는 바람에 분위기가 참 전라도 말로 '거시기'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는 첫날밤은커녕 생리가 터지고, 나는 스킨스쿠버 체험 중에 난생처음 겪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공황 상태에 빠졌는데, 여행 가이드가 막무가내로 잠수시키는 바람에 바다 구경이고 뭐고 시퍼렇게 질려, 영혼이 가출한 상태가 된 기억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신혼여행은 참 별로 였다. 그때 다시 한번 생각했다.


'두 번 결혼은 못하겠다.'


 나의 결혼 생활의 시작은 환상과 꿈의 나라가 아니라, 엉망진창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꿀처럼 달콤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추냉이처럼 싸하고, 눈물이 찔끔 나며, 톡 쏘는 모습도 꽤 많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작이 비록 난장판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늘 직면하게 되는 게 바로 결혼이라는 것이다. 모든 남자가 최수종 같거나 션같지 않고, 모든 여자가 하희라 같거나 정혜영 같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적나라한 나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우린 늘 생생한 20대의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없던 주름도 생기고, 때론 머리카락이 벗겨지며, 배가 가슴의 너비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날렵한 턱선은 없어지고, 목인지 턱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이런 모습 조차 결혼하면 견뎌내야 한다. 내 인생도 어려운데, 남의 인생까지 참견하며 신경 쓰기 어려운 사람들은 비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혼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나 개인의 차원에서 좋은 것은 아니다. 싱글의 삶이 화려한 것처럼 꾸며지지만, 결국 싱글도 완전한 관계와의 단절은 불가능하다. 때론 동거를 하기도 한다. 동거는 책임을 현격하게 낮추는 역할을 한다. 상대방이 매력이 없어지면 언제든지 떠나면 그만이다. 그게 '사랑'일까?


 어떤 사람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불합리하고 여성을 억압한다고 주장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 결혼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고, 지금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불합리와 억압을 넘어선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린 때론 파괴된 가정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을 기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가 그러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는 편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은 쇼나 화려함이 아니다. 오히려 엄숙한 언약에 가깝다. 그래서 결혼식에 초대되어 온 사람들은 구경하러 온 청중이나 관객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결혼의 '증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혼 서약을 할 때,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평생 당신을 사랑하겠노라고 맹세를 한다. 혹 배우자가 암에 걸리더라도, 직장에 잘려 가난하게 되더라도, 자녀를 낳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아들이 마약 중독에 빠지더라도.. 이러한 알 수 없고 불안한 미래를 감안하라도 내가 배우자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상대방의 외모나 성적 매력에만 매몰되지 않고, 상대방의 어떤 변화든지 받아들이고 그것까지도 견뎌내는 마음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추냉이를 먹지 못했다. 그래서 회 같은 건 초장에 찍어 먹곤 했는데, 20대 중후반이 지나자 고추냉이를 간장에 잔뜩 풀어 먹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면에도 겨자를 듬뿍 넣어 인상을 구겨가며 먹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초밥의 참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혼은 달콤한 맛만 느낄 수는 없지만, 때론 달콤한 이외의 맛들이 더욱 매력적일 때가 많다. 굳이 결혼의 환상을 깰 필요는 없지만, 그 환상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로 가득 찬 것이 바로 '결혼'이다.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모든 것을 견뎌 낼 사랑'을 추구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참는 것을 싫어한다. 인내라는 것은 좋은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아무리 세상이 '네 멋대로 살아.'라고 하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이야말로 그 가치가 더욱 빛날 뿐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 그런 사랑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애초에 쉽게 버려지는 마음은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그냥 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돼. 아니! 하지 않을 거야! 가 아니라.. 

결혼해봐! 

네가 경험하지 못하는 가치를 경험하게 되고, 그 가치에 즐겁게 헌신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테니... 


고추냉이의 맛을 아는 자. 

결혼할만한 사람일 것이다.(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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