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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Jun 07. 2024

게릴라 오디오 시즌 1: 밀레니엄 뮤직

브런치북 속 시리즈 #1

입에 닳도록(입이 아니라 손가락이라 해야 하려나) 얘기해서 이제 나의 글을 자주 읽어주신 분들은 지겨울 수도 있을 소리인 것 같긴 하지만, 나는 90년대 중반과 세기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며, 그러한 점들이 내가 하는 음악에도, 내가 쓰는 글에도, 내 전반적인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그러한 불안정함으로 인해 인생의 흑역사를 쌓는 시기, 사춘기가 극에 달하는 시점을 가리켜 '중2병'이라는 용어를 붙이는데 나는 98년에 실제로 중학교 2학년이었고 2000년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1999년에 중3이었으니 세기의 전환부에 중2병을 겪은 진정한 '세기말 키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시기의 액션과 SF, 호러 영화에는 십중팔구 사운드트랙이 끝내줬는데, 가장 좋아했던 뉴메탈/랩메탈 곡들은 물론이고, 인더스트리얼과 얼터너티브 록, Prodigy나 The Crystal Method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들이 트랙리스트의 주를 이루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이러한 음악을 하나로 묶어서 '하드코어'라고 칭했다. Black Flag, Agnostic Front나 Madball 같은 진짜배기 하드코어 밴드 입장에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고, Rage Against the Machine이나 Faith No More 같은 팀이 자신들과 림프 비즈킷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다는 걸 들으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거부감을 드러냈겠지만(실제로도 그러했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는 '하드코어=핌프락=랩메탈=뉴메탈'이라는 공식이 주류 언론에서 통하던 시기였다.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거부감 드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리스너 입장에서는 이러한 단순한 분류로 인해 편집앨범과 OST를 통해서 팝을 벗어난 다른 장르의 영역으로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드코어!!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가 어떤 시기였나 생각해 보면 국내 가요계도 혼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나가던 아이돌 그룹인 H.O.T.는 열정적으로(!) Cypress Hill과 Rage Against the Machine을 오마주(?)하고 있었고, 신화의 'Yo!(악동보고서)'에는 중간에 김동완 파트에서 데스 그로울링과 유사한 창법을 들을 수 있으며 젝스키스의 '로드 파이터'에서는 그로울링 창법과 랩, 테크노 사운드를 결합한 인더스트리얼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에 가장 잘 나가던 솔로 여가수 이정현이 인디밴드 닥터코어911과 랩메탈 장르의 콜라보를 했고, 10년 넘게 서태지와 신해철은 힙합과 메탈, 인더스트리얼과 뉴메탈을 본인들의 음악에 녹여내면서 국내 가요계를 이끌었다.

하드코어한 고음!!

흔히 이런 류 음악의 빠른 몰락에 주목하며 '유행이 짧았던' 장르라고 이야기하지만 단지 그 자멸의 과정이 너무나도 극적이었기에 그런 인상이 강한 것이지 이러한 음악들은 20~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간의 인식보다는 주류 문화에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시기에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현재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그러한 점이 더욱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다. 록/메탈 장르에서는 Bring Me the Horizon이나 Wargasm 같은 팀들이 이 시기의 음악을 재현하고 있으며 세기말에 전성기를 맞았던 팀들의 과반수 이상은 아직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며 각종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슬롯을 차지하고 있다(이젠 오히려 좀 물러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환갑이 다가와도 끊임없는 아디다스 사랑

이 쪽 장르에 대한 이야기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하고 뉴메탈 및 유사 서브장르에 대한 개인적인 애증이나 요즘의 소소한 부활 및 트렌드, 인상 깊었던 앨범 등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있지만 정작 밴드나 아티스트를 하나씩 다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유를 따지자면 수많은 블로그나 웹진에 Korn이나 Limp Bizkit, Linkin Park에 대해 이미 많은 글들이 올라와있기에 개인적으로 딱히 더 추가할 얘기가 있나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정작 '뉴메탈 외길인생'을 고집해 온 나도 생각보다는 이 분야에 대해 지식과 식견이 얄팍하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이 시기에 음악을 많이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은 레코드나 CD 수집 매니아가 아니었던 이상 대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OST나 컴필레이션 앨범 등으로 장르 음악을 접했거나, 소리바다나 냅스터, edonkey 등의 프로그램으로 음원 하나씩 다운받아 들은 경우가 많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음악을 들었던 우리는 Kid Rock의 'Fuck Off'라는 곡이 키드락과 림프 비즈킷의 콜라보레이션인 줄 알았고(당시 소리바다 파일명 대부분에 그렇게 적혀있었는데, 실제로는 키드락의 곡의 후반에 에미넴이 잠깐 피처링했을 뿐이다), 'Sleepy Hollow'라는 곡이 마릴린 맨슨과 콘의 합동 트랙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는 Deadsy라는 밴드의 곡에 Jonathan Davis가 피처링했다). 잘못된 정보 투성이에 조악한 음질로 음악을 띄엄띄엄 들었으며 온전히 한 앨범을 쭉 감상하지 못했기에 정말 좋아했던 밴드가 아니라면 막상 제대로 그들의 음악을 아티스트가 의도한 상태로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에 나름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세기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던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지금 새로이 다시 감상해 보고 매주 나만의 방식으로 다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획을 '게릴라 오디오: 시즌1'로 삼기로 했다. 단순히 아티스트의 역사나 행보에 대해 다루고 디스코그래피를 훑는 건 그냥 나무위키나 다른 블로그를 읽어도 충분할 정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니 철저히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런 쪽 음악을 싸잡아서 '하드코어'라는 잘못된 용어로 통칭하는 건 음악인들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거 같아 고민하다가 뉴메탈, 인더스트리얼과 당시 유행했던 테크노 음악을 '밀레니엄 뮤직'으로 통칭하기로 하였다. 다음 주부터 어떤 밴드 및 아티스트가 나의 글의 희생양(?)이 될지 많이 기대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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