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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Jul 13. 2019

에세이와 시11

탐조 전문가 동행기

어느 토요일 오후에 받은 통화로 시작된 이야기..

어느 일요일 탐조 동행에 나선 날의 맑은 하늘.

새로 유명하신 교수님께 안부 인사 차 전화를 드렸다.

건강하신지, 근황은 어떠신지 궁금했다. 바쁜 생활에 매몰되어 살다 보면 정작 소중한 인연이 있는 분들께 전화 한 통도 못하고 살 때가 많다. 사실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게 사실에 더 가까운 일이다.

이런 저런 얘기와 함께 다음 탐조에 동행해 가자는 말씀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이런 전화로 인사를 나눠 온 지도 벌써 17년째로 접어든다.

그런데 잠시 뒤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무슨 일이실까, 라는 생각에 궁금증으로 통화키를 눌렀다.

"내일 시간돼? 일요일 일 있어?"
"아뇨, 이번 주말은 좀 쉬려고 합니다.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시간되면 원주에 제비 촬영 같이 갔으면 하는데, 어때?"
"어, 좋습니다. 교수님."

​다음 날 아침 경의선을 타고 풍산역에서 약속 장소인 회기역으로 갔다. 약속 시간은 8시였다. 서둘렀다.
회기역 당도. 곧 교수님과 만난 순간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하시는 것이었다.


운전대를 제가 잡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말씀을 드렸지만,

건재함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으신지 뜻을 굽히시지 않았다.


곧이어 교수님 차량으로 휴게소도 들러가면서 여행 삼아 원주 황둔마을로 갔다. 차량 속 대화에서 이렇게 운전을 하기까지 3년의 세월  동안 훈련이 필요했다고 하신다. 아파 누워서도 새를 찾아나서려면 오직 차를 몰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집념의 승리를 몸소 본 순간이다.


2019.07.07 강원도 원주시 황둔마을에서.

황둔마을은 찐빵으로 유명한가 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제비 마을이다. 교수님 단골집으로 들어가 찐빵을 먹었다. 이 집 옆에는 벽오동나무와 헷갈리는 개오동나무가 한 그루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잠시 감상한 뒤 제비집 촬영 장소를 물색했다.

벽오동나무로 잘못 알기 쉬운 개오동나무.

이 마을에는 집집마다 제비들이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고 있다. 그중에는 보기 드문 귀제비도 기다란 터널형, 아니 흙으로 만든 이글루 같은 집을 짓고 있다. 그런데 너무 높고 새끼 관찰이 불가능해 촬영을 접었다.


이글루가 벽에 달린 모양으로 집을 짓는 귀제비.

다시 일반 제비로 관심을 돌렸다. 제비집의 높이와 카메라 앵글, 그리고 접근 거리가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차량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중 한 곳이 적당하여 자리를 잡았다.

일반 제비의 집. 모이를 먹이느라 분주한 모습.

아비어미 제비들은 부지런히 모이를 새끼제비들에게 물어다 주느라 분주했다. 어미제비는 집에서 새끼들의 배설물을 치워 내고, 때로는 새끼들에 붙은 이들도 처리해 주었다.

​새끼제비들은 처음에 4마리로 보였으나, 나중에는 모이 경쟁에서 뒤쳐진 1마리까지 총 5마리였다. 형제들 간에 모이 경쟁에서 뒤쳐진 1마리에 대해서 촬영 중이었던 교수님은 어쩌면 강남으로 날아가다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총 다섯 마리의 새끼제비들이 든 둥지.

"교수님, 저 제비들이 여기서 번식한 뒤 언제 강남으로 가나요?"
"10월 초면 날아가. 거긴 태국이야. 벌레도 많고 따뜻한 열대 지방이지."
"아니, 따뜻하고 벌레 많은 강남에나 살 일이지 여기 번식하러 왜 오죠?"
"여기 오는 건 번식기 시절에 강남은 우기야. 습도가 높고 비도 많아. 카메라 들고 그 시기에 가 봤는데, 렌즈에 습기가 차서 하루 정도는 카메라를 사용조차 못할 정도였어."

가끔 부모제비들은 전선줄에 앉아 깃털 매무새를 부리로 다듬는다. 날씨는 땡볕에 무더위도 심했다. 양산을 파라솔처럼 펼치고 그 아래에서 두 사람은 제비 촬영에 몰두하였다.


그간 숱한 제비들을 보아 왔지만 이렇게 작정을 하고 카메라로 관찰해 본 적은 처음이다. 생명의 신비를 제비를 통해 다시 한 번 체감해 본다.

새끼들에게 모이를 주고 깃털을 잠시 손질하는 어미제비.

제비 촬영을 마치고 소쩍새 촬영을 위해 다시 이동하였다. 강원도 내의 노월마을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수령 250년이 훨씬 넘은 고목의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둘레 길이만 5미터가 넘었다. 아직 3시 30분이다. 차에서 한 숨을 주무시겠다고 하신다.


수령 250년 이상이나 된 느티나무.

1시간 남짓 지나 소쩍새를 불러내기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소쩍새의 울음 소리가 담긴 녹음 테이프를 트는 일이다. 교수님의 설명으로는 여긴 세 번째 왔고, 소쩍새 녹음 소리를 틀면 산 속에서 영유권 방어 차원에서 실제 소쩍새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새떼들이 날아왔을 때 영공을 방어하기 위해 제트기가 출격하는 것도 소쩍새의 행동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녹음기가 고장났다. 교수님은 사전에 확인을 못한 것을 후회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던지, 소쩍새 울음 소리를 배경으로 올빼미 소리가 나는 테이프를 MD플레이어로 틀었다.

"구구구구우울~ 스쩍~ 스쩍~ 구구구구구우루룰~스쩍~"

노월마을 앞 전경.

마침 마을에 당도한 교회 사람들과 교수님은 대화를 나눴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나이도 지긋한 목사님에게 교수님이 질문을 던진다.


"목사님. 신약, 구약 통틀어 새가 몇 종이나 등장하는지 아시우?"
"네? 모릅니다,"
"총 126종이우"
"아! 네"

목사님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으신다. 그러면서 이 마을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었다. 이곳은 워낙 산골이 깊어서 육이오 때도 중공군이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해 그냥 지나친 곳이란다.

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지금 녹음기에서 들리는 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난 올빼미 소리라 설명을 드렸다. 목사님과 아주머니는 잠시 집에 들어가 나오시더니 애호박 3개와 냉커피 두 잔을 우리에게 전한다. 아직 살아 있는 인심에 우리는 그분들께 웃음으로 화답했다.

1시간 남짓 녹음테이프를 틀어도 소쩍새는 유혹되지 않았다. 촬영 장비를 접고 아쉬움을 남긴 채 그곳을 떠났다. 나는 교수님께 차량에서 말을 건넸다.

"교수님, 그간 새를 찾아갔지만 허당한 날도 많았겠지요?"
"그럼. 많았지. 다 그런거야~ 그만큼 현장 가서 새를 찍는 게 힘들지. 내년이면 팔십인데, 이 나이에 현장 찾아가는 사람은 지금은 나밖에 없어~"

오늘은 탐조 동행이라는 형식으로 새를 현장 취재에 나섰다. 집나간 고양이를 찾아나선 적은 있지만, 새를 찾아나선 건 처음이다. 무척이나 생경하고 의미 있는 날이다.

얼마 전 천국으로 올라간 애완묘 루비. 부디 새로 태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 났으면...

눈물​

요즘은 수북이 쌓인
밀린 물세 고지서에
마음이 바쁘다.
_ 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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