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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Jun 11. 2019

에세이와 시7

꽃에 대한 사념들..

꽃의 계절을 지나 여름을 알리는 6월이 왔다.


청계천 상류에서 포착된 꽃.


한동안 마음이 바빠 그랬는지 올해는 꽃을 많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뒤늦게 이럴 게 아니다 싶어, 무심코 오갈 때마다 꽃이 보이면 그냥 폰으로 찍었다.


일산 호수공원의 장미(좌상). 충북 단양의 꽃터미널(우상), 청계천 상류의 금잔화(아래).


한창 때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꽃이다. 그러나 시들고 나면
참으로 보기 싫은 것도 꽃이다. 꽃향도 마찬가지. 향이 향긋할수록, 시들면 악취도 심하다.


이런 탓에 꽃은 시들면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인식도 미美가 추醜로 바뀌면서 그 충격에 버림의 대상이 된다. 그때부터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다. 아마 이 같이 극단적인 대우를 받는 사물도 또한 없을 것이다.

화훼꽃이다. 최고의 미美가 최고의 추醜를 보인 데 따른 대가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장미(일산 호수공원).


오래전 꽃집에서 잠시, 대량으로 재배된 화훼꽃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게 된 적이 있다. 꽃은 소비자에게 가장  아름다울 때 상품 가치가 가장 높다. 도매상인들에게는 갓 피기 전 봉우리졌을 때 더 높이 매겨진다. 이를 위해 꽃에는 완벽한 생육 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일정한 투입이 이루어진다. 그 뒤 꽃들은 온상에서 온화하게 영예롭게 졸업(출하)한 뒤, 특상, 상, 중, 하로 등급이 매겨진  뒤 자리에 맞게 곳곳으로 나간다. 사회로의 진출이다.

식물에 따라 한해살이도 있고, 여러해살이도 있지만,  꽃은 사람이 특별한 애정을 두지 않는 한, 그 화려함이 다한 순간 상품적 가치도 다해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미의 상품화는 종말이 좋지 않다. 종말은  즉 투입에 대한 효과가 끝나면, 곧 용도 처분의 길을 걷는다. 소모품의 종착지로 귀결된다.

반면 자연의 야생화는 그런 졸업이란 것이 없다. 온상에서 곱게 자란 것과는 달리 투입도 없다. 있다면 그저 하늘과 바람과 비와, 땅 정도. 그러나 사계四季의 모진 환경을 홀로 극복해 피운 것으로 존재감이 매우 다양하고 무겁다. 사람들은 시쳇말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고 한다. 이런 꽃은 자생력도 강해 수명이 길다. 향이 아주 진하지만, 시들어도 악취가 덜하다. 투박미로 인해 원래의 모습과 큰 차이도 없다.



청계천 상류의 이름 모를 야생화.


화훼꽃이든, 야생화든지 간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지만, 두 꽃은 완전히 다른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아름답지만 소모품으로 버려지고, 다른 하나는 투박하지만 경이로운 생명체로 존중된다. 이렇듯 미학적인 면에서도 두 꽃은 뿌리부터 다르게 평가된다.

알다시피 자생력이 질기기로 유명한 꽃식물로는 민들레가 있다. 민들레는 봄철에 쉽게 볼 수 있다. 이 꽃은 역경에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성향으로, 오늘날에는 힘은 없지만 역사를 바꾸는 민중, 민초를 상징한다. 그 자생력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연꽃과 대등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다.



자생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민들레. 민들레는 버릴 게 없는 허브이다.


우린 미학적으로 두 꽃을 통해 볼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녀에게 물려 줄 최대 유산은 무엇인가, 자문을 해본다. 최근 한동안 상류층의 교육 실태를 풍자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 드라마를 굳이 다 시청하지 않더라도 내용은 미루어 짐작이 갔다.

한때 아이들에게 과학을 잠시나마 가르친 경험이 있다.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은 초일류였고, 사회적 지위도 상당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상위 0.1프로는 아니더라도, 남부러울 것 없이 물질과 신분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자식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아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또한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과 게임 활동에 몰두하는 자녀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막대한 투입을 치르는 상황에서 그러한 행위들이 최대 리스크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됐거나 그 투입에 따른 결과로서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내신 등급이 나왔다.

그 뒤 아이들은 등급에 맞춰 대학으로 진학해 지금은 어엿한 사회 일원으로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과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것이 꽃의 상품화와 다를 게 뭔가,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사회가 그런 사회니, 자녀가 뒤쳐지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생각이 마냥 옳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소질을 지녔는데 그 점이 외면된다는 것이다. 아직은 길을 모색해야 할 단계고, 자신의 소질을 자각해 가는, 일명 "나를 찾아가는 시기"를 거치면, 굳이 내가, 부모가 강요치 않더라도 스스로 학습할 능력은 충분히 있는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단 1개월도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

실현이 어려운 희망 사항이지만, 당시에는 프랑스처럼 청소년기에 철학적 사고를 훈련하는 교육이 필수적으로 도입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도 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독서모임, 독서토론이랄까, 토론과 포럼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소양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당시 나의 관찰적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다.

아뭏든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들이 각자 민들레와도 같은 생명력 있는 존재로 성장해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으리라 믿어 본다.

여담이지만, 그간 수많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과학을
가르쳐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아이는 가장 말 안 듣고, 말썽도 가장 많이 피웠던 애다. 물론 10년 전의 일로서 지금은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당시 과학을 가르치기에 앞서 기초 학력 파악 차원에서 내가 던진 질문에 그애가 한 말이 기억난다.  당시악몽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구가 태양 근처에서 맴는 이유가 뭐야?"
"네, 샘. 그건 태양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민들레 홀씨


비상하는 홀씨. 태양을 좌표 삼아 바람을 타고 떠나는 대여정.


어디에도
앉을 자릴 찾지 못하는
도시의,


뜯겨진 영혼.


_ 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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