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몬 Jun 10. 2019

에세이와 시6

진료 대기실에서 송어를 생각하며


대학병원을 방문해 당일 진료 차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예약 대기자들이 많아 평균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 무척 지루한 시간이다. 대기순번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엊그제 먹었던 송어가 생각났다.



무지개송어(rainbow trout). 전세계에 분포하는 연어과의 회귀종.


송어는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맑은 시냇가에서 볼 수 있다. 한랭성 어종으로서 자연 상태에서는 연어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부화한 하천의 상류로 회귀한다. 살빛이 마치 적송나무와 같이 붉다고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그 빛깔은 적빛이 선명하고 곱기로 유명하다. 송어회를 접할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이유다.



적송나무의 색상을 띠는 송어회.


오래전 송어에 대해 알아본 일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너무도 지루한 탓에 대학 병원 대기실에서 소일거리로 적어 본다.

듣기로, 송어는 수온이 일정 이하, 수질 1급수에서만 살 수 있어 오늘날 내륙에서는 깨끗한 계곡의 물이나 산 속의 용천수를 끌어다가 양식한다. 주로 수온이 낮은 경북 북부, 충북, 경기도, 강원도 등 중부 이상의 지역에서 양식된다. 특히 강원도의 영월, 평창은 수온, 수질에서 송어 양식의 최적지이다. 그중 영월은 석회암 지대인 카르스트 지역이 많아 용천수가 극히 드문 지역이지만, 간혹 있는 곳에서 양식되는 송어의 회맛은 독특한 미네랄 성분들로 인해 타지 송어의 식감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다. 같은 무지개송어라고 해도 양식 환경에 따라 육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듯 중부 지방의 지역에서 주로 양식되는 송어는 오늘날 내륙 지방에서 즐겨먹는 대표적인 횟감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부 지방의 토속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송어회 기본 세트.


콩가루, 아채, 초장, 마늘, 참기름, 와시비 등을 넣어 야채와 먼저 버무린 뒤 송어를 넣어 비벼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물론 서해에서 바다송어의 양식도 성공했지만, 아직 그 맛을 못봐 품평은 못하지만, 바다 횟감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깔끔한 뒷맛이 있다.



푸른 야채와 선홍색의 송어회가 맛깔스러운 대비를 이룬 모습.


송어가 원래부터 양식 어종은 아니었다.  '세종실록'엔 함경도의 하천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특산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선 강원도와 경상도의 일부 지역 토산물로, '오주연문장전산고'엔 함경도 특산물로 기록돼 있다. 오래전수온이 낮은 함경도 지역에선 철마다 회귀하여 작살로 잡던 대표적인 수렵 어종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수질 오염과 기후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어 자연산 회귀 송어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1987년도부터는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어 어획 양이 줄어 급기야 양식에 나섰고, 내륙 지방의 민물 양식 어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양식 어종은 수산과학적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자란다. 치어 입식 뒤 씨알 좋은 횟감으로 성숙하는 데는 보통 2~3년(경우에 따라서는 5년까지)이 걸린다. 정기적인 유해성 및 품질 검사를 받은 뒤, 출하 전에는 반드시  식품으로서 안전성을 평가받는다. 마침 송어회를 먹었던 식당에도 송어양식협회장 명의로 안전성에 대한 책임 보증의 광고문까지 걸려 있다. 민물 횟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걷어 내려는 안간힘이 엿보였다. 사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휘젓고 다니는, 원산지 불명의 바다 횟감보다 안전하지만 소비자들의 편견은 금강석보다 견고하다.

외국의 고급 유통체인에서는 양식 어종이 안전성이 담보되어 더 선호된다. '책임 있는 양식', '지속가능한 양식'의 엄격한 출하 품질 기준을 적용하는 세계적인 인증 기관에 의해 검증이 이루어지는 탓이다. 심지어 아동청소년이 반인권적으로 노동에 동원되었는지도 출하 심사의 대상이다. 그 사례를 먼 곳에서 찾을 것도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 즐겨 먹는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대표적이다. 송어도 양식면에서 어찌보면 그러한 고등어와 마찬가지다.

오래전 송어협회장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산천어 축제를 벤치 마킹한 송어 축제도 이젠 강원도를 중심으로 국내 유명 레저 문화, 6차 산업으로 자리를 잡아서인지 송어에 대한 인식의 개선도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병원에서 이처럼 송어를 떠올려보기는 처음이다. 대학 병원에서나 가능한 일. 대기실에서 환자들을 위해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 시간 만에 간호사의 호명이 이어진다.

송어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 앨범 재킷.


눈부신 작은 개울 속에 송어가 헤엄치네
명랑한 송어 한마리가 쏜 살같이 헤엄치네
물가에 서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바라보았네
작은 개울에서 목욕하는 송어 한 마리를.

한 낚시꾼이 낚시대를 가지고 기슭에 서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냉정하게 지켜보았네
난 낚시꾼을 보며 생각하였네
이렇게 맑은 물에선 송어를 낚을 순 없을 거라고
하지만 낚시꾼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였고
개울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켰네
머지않아 탁한 물속에서 송어가 잡혀 올라왔고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송어를 지켜보았네.

_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곡 '송어' 가사.

이전 05화 에세이와 시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