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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Nov 12. 2023

처음 어머니라고 불리던 날

‘홍OO입니다’ 


전화가 오면 늘 그렇게 받았다. 여보세요 대신, ‘홍OO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내 소속과 이름으로 시작하는 업무 메일을 썼고,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늘 내 일과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OO 대리, OO 팀장, OO 실장님, OO 이사님. 


그렇게 나의 삶을 열심히 살다 보니 점점 내 이름도 성장해 가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함께하는 나의 삶, 나의 일, 나의 친구들을 사랑했다. 내가 사랑한 나의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리고는 서른둘, 생각해 왔던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했다. 결혼할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결혼할 때 만난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렇게 나의 것들이 더 늘어갔다. 


그리고 나의 아기.


2주에 한 번씩 회사 근처에서 가장 큰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바쁜 업무 중 짬을 내어 가다 보니 미리 예약을 하고 시간을 딱 맞춰 가지만 병원에는 늘 산모들이 바글바글 했다. 아기 수첩을 손에 쥐고 뒤뚱뒤뚱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산모들은 여유롭다 못해 무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난 시간이 없어.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야. 저출산 시대라는데, 세상에 산모들이 참 많기도 하지. 수많은 산모들 사이에서 난 왠지 저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병원에 방문하면 우선 데스크 옆 작은 방에 들어가 몸무게와 혈압을 잰다. 2주마다 같은 체중계로 몸무게를 기록하니 체중이 늘어나는 곡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결혼 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몸무게가 일정 범위를 유지했었는데, 이제는 내려가는 법이 없이 꾸준히 숫자가 올라간다. 분명 아이는 콩알만 할 텐데 몸무게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게 납득이 안 간다. 간호사도 그렇다는 표정으로 이제부터는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주 후에 오실 때까지 58kg은 넘지 않도록 관리해 주세요. 어머니~’


잠깐,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어머니’라는 저 말은 지금 나를 부르는 말인가? 그렇지. 지금 저 간호사와 나 둘 밖에 없고, 저 말은 분명 나에게 하는 말이긴 하지. 그리고 내 뱃속엔 아기가 있고, 난 그 아기의 어머니… 어머니가 맞구나. 내가. 


누군가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그 장면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난, 어머니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고 살아왔을까. 셀 수나 있을까. 아이와 관계된 모든 만남에서 난 어머니였다. 예전엔 엄마에게 연락할 때 폰에서 ‘엄마’를 검색해서 찾곤 했는데, 이제는 ‘엄마’를 검색하면 수십 명이 넘는 누구누구 엄마들이 나와 내 엄마를 찾을 수가 없다. ‘내 엄마’, 또는 ‘우리 엄마’라고 바꿔 저장해야겠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엄마를 불러댔다. 엄마로서의 삶은 그렇게 너무나도 깊숙이 파고들어 어느새 난 뼛속까지 엄마가 되어 버렸다. 어릴 적 마치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을 것 같다고 느꼈던 것처럼…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내가’라는 말보다 ‘엄마가’라는 말이 익숙해진지도 몰랐다.


엄마로 불리기 시작했던 그날, 난 알았을까? 

내 삶은 주어부터 서술어까지 몽땅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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