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

190404 Day 3. 수비리에서 시즈루 메노르까지 25.3km

by YEON

프랑스길에서의 첫 대도시인 팜플로냐에서 쉬지 않고 시즈루 메노르까지 가는 날이다. 나의 선택이었지만, 순례길 중 처음으로 맞이한 이별의 날이기도 하였다.

눈이 내려 더 아름다웠던 팜플로냐 가던 길

혼자 있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온 곳이었는데. 처음부터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 혼자 있는 시간은커녕 사람들과의 있는 시간이 참 좋았더란다. 나도 모르게 언니들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할 때에는 '이러려고 혼자 온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었다.


이 날은 수비리에서 출발해 팜플로냐에 도착할 때까지 언니들과 계속 함께 걸었다. 서로 걷는 속도가 맞지 않아 그동안에도 숙소만 함께 정해놓고 길에서는 따로 걷고는 했었는데, 아마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에 서로의 속도를 맞췄던 것 같다. 만나지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의 첫 동행이었던 Y언니, J언니

언니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중간에 바가 문을 열지 않았고, 결국 도네이션 바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먹으며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나는 팜플로냐에서 더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갈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다 도착한 팜플로냐. 팜플로냐에 도착했고 헤어지는 순간이 왔다. 헤어짐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함께 하기에는 힘든 일정이기에, 씩씩하게 언니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서로의 길을 응원해주며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지며 언니들이 나에게 한 이야기,

"걷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 우리가 네 뒤에서 너를 따라가고 있으니까. 언제든 다시 함께해도 좋아. 네 뒤에는 언니들이 있다!"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라는 것은 정말 큰 위안이 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의 시간이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생장으로 가는 기차에서부터 언니들을 만나 순례길 중 혼자인 적이 없었던 나. 그렇게 내가 원하던 대로 정말 혼자가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한다는 혼자 여행하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밥 먹기, 혼자 노래방 가기 등 모두 즐기는 편이다.

혼자 있게 되면 나만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그 사람을 신경 쓰게 되고 '함께'라는 단어를 위해 '나'를 조금은 작게 만들어야 하는데, 혼자 있으면 나에게 온전히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며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종종 즐기고는 했다. 혼자 여행을 가거나, 여건이 되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라도 가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순례길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근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돌아갈 집이 있고, 함께 밥을 먹을 가족들이 있고, 연락하면 만날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랬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나 혼자였다면, 그 누구도 없었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늘 혼자이기에.


순례길도 그렇다. 만약 정말 혼자였다면 가능했을까? 아니, 아마 버거웠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걸어만 가도 되는 길임에도. 함께 걷고, 함께 걷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고 위안이 되니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언니들과 헤어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고, 다른 일행이 생기기도 했지만. 순례길에서는 혼자 걸어도 혼자 걷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참 행복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더 즐길 수 있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혼자 걷던 팜플로냐

팜플로냐는 너무나 커서 화살표를 잃어버릴 뻔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도착해서 시즈루 메노르의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도 생겼지만, 내 뒤에 언니들이 있다는 위안에 무척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다. 또한 J오빠도 한참 앞에서 걷고 있었지만, 팜플로냐에서 길을 잃을 뻔했다니 영상통화로 길도 알려주며 힘이 되어주었다.

끊임없이 펼쳐진 유채꽃밭과 그림 같은 하늘
너무나 아름다웠던 알베르게

도시 내에서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워낙 커서 팜플로냐를 지나는 것에만 거의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시즈루 메노르로 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혼자 걸으며 보게 된 광경은 너무나 멋있어서 넋을 잃을 정도였다. 끊임없이 펼쳐진 유채꽃밭과 그림 같은 하늘은 나에게 힘내라며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고, 그렇게 도착한 시즈루 메노르의 알베르게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행복했다.


또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대도시인 팜플로냐에서 묵기 때문에 이 곳에서 누군가를 만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근데 이 곳에서, 미국에서 오신 어머님과 수비리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던 Y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Y님은 나의 순례길 일정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동행이 되었기에 이 순간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이전 05화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