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lluda Oct 30. 2020

냄비에 숟가락 두 개 걸친 비빔밥

- 만약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나의 두 번째 여자에게 전생에 빚을 참 많이 졌었던 것 같아.

옛말에 돈(빚)은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돌려받는다는 말처럼 우리 어머니, 게 전생에 빌려 준 빚 서서 받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 어머니가 이뻐하시던 손녀딸과 어머니 얘기하는 중이에요. 어머니께서 잘 키워주신 덕분에 이렇게 딸과 앉아 '그땐 그랬었지' 하며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참 좋네요."




네 할머니가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수국


- 할머니 생각 많이 나냐고?


 당연하지. 돌아가시고 보니, 남의 어머니인데 이상하게 내 어머니보다 더 많이 생각나.

'사랑'은 '사랑한다'라고 하지만 '정'은 '정이 쌓인다, 정이 든다'라고 하잖아. 정이 들기까지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 것 같아. 

네 할머니 생각하면 내 인생이 생각나. 너무 힘이 들어서 다시는 얘기도 꺼내고 싶지 않았던 그때였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마냥 헛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 할머니와 정이 많이 들었더라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신 살아생전에 크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쉬워.


- 할머니에게 서운했던 것?


글쎄, 10년 넘게 꼼짝도 못 하시고 침대에 누워계신 할머니 병수발 하면서 36년을 같이 살았는데 살면서 서운했던 것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돌아가시고 나니까 못 해 드린 것만 생각나서 지금은 마냥 그립기만 해. 그래도 딱 두 가지는 아직도 잊히지 않고 가슴 한 켠에 불주사 자국처럼 여전히 남아있더라. 

결혼하고 신혼여행이라고 나가서 하룻밤 자고 처음으로 시집에 발을 디딘 날이었어. 단칸방이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엄마가 20년 넘게 살았던 곳을 떠나 앞으로 살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그랬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네 아빠가 배 고프다고 빨리 밥 달라고 재촉을 하시더라. 시집오기 전에 네 외할머니께서는 꼭 새사람이 아니더라도 집에 손님이 오면 늘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리셨어.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엄마는 처음 새사람 오는 날이니까 당연히 네 할머니께서 미리 한상 차려놓고 새 며느리를 기다리실 줄 알았지.

그런데 웬걸. 네 할머니께서 아빠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밥을 비벼서 냄비에 숟가락 두 개 걸쳐서 상도 없이 가져다주시는 거야. 그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아, 이 집안은 새 며느리 맞는  풍속이 이런가. 무슨 액 땜  같은 건가 보다.' 생각하며 좋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참 서운하더라. 그래도 서운하단 말 한마디 안 하고 가슴에 담아 둔 채 두 번 다시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어. 엄마가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는데도 엄마 얼굴이 얼마나 뜨겁던지. 엄마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던 거지.

사실 엄마가 결혼할 때는 엄마네 집이 망할 대로 망한 뒤였어. 네 큰외삼촌 때문에 전 재산을 모두 탕진했거든. 큰외삼촌은 당시 군 조합장이었는데 조합장 하면서, 노름에 여자에 술에 조합돈을 마치 자기 돈 쓰듯 쓰며 다녔던 거야. 외할아버지께서는 그 일이 발각돼서 큰아들 인생에 빨간 줄 가면 안된다고 계속 돈으로 틀어막고, 틀어막고 했지. 그러다가 결국 집안의 모든 살림이란 살림에 다 빨간딱지가 붙었어. 송아지 뿔에까지. 아마 그래서 엄마가 더 네 할머니께 아무 말도 못 했던 것 같아.

간신히 남아 있는 텃밭 팔아 딸 시집보내시겠다는 네 외할아버지 말을 듣고 나는 아무것도 안 받고 아무것도 안 가지고 저 강원도 산골짜기로 시집갈 거라고 하고 정말 네 아빠 양복 한 벌 안 해주고 시집왔거든. 물론 엄마도 양말 한 짝 받은 건 없지만 이상하게 두고두고 그게 무슨 빚처럼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더라. 그래서 엄마는 시집 온 첫날, 그 첫 끼니에 대해서는 평생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어


자존심을 건드린 비빔밥이지만 자존심을 버릴 만큼 여전히 맛있는 비빔밥


- 그런데 왜 그 냄비밥 이야기를 다시 꺼냈냐고?

   네 작은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처음 결혼해서 살던 망우동 집에서 사정이 생겨 이사를 해야 했어. 신내동에 전셋집을 얻어 놓았는데 전 주인이 전세금을 안주는 거야. 너 장위동 할머니 알지? 장위동 사셔서 장위동 할머니라 부르는  할머니 손 아래 동서. 할머니처럼 결혼하고 몇 해 안 지나 6ㆍ25가 나서 남편이랑 생이별을 하셨대. 할머니와 처지가 비슷해서인지 두 분이 서로 잘 지내셨어. 엄마 결혼할 때 장위동 할머니께서 금반지를 주셨는데, 그 석 돈 짜리 금반지를 들고 몇 번을 들락날락. 결국 그 금반지를 팔아서 어찌어찌 전세금을 만들어 방 두 칸을 얻어 신내동으로 이사를 왔어.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너 이렇게 넷이 한 방을 쓰고 증조할아버지, 네 작은 아버지 이렇게 한 방을 썼지. 그때 엄마 소원이 뭐였는지 아니? '방 하나 더 없어도 되니까 그냥 큰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거였어. 분명 자려고 자리 깔고 누웠을 때는 다 누울 수 있었는데 자다가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내 자리가 없는 거야. 너 깰까 봐 조심조심 비집고 들어가서 한 팔을 베고 몸을 옆으로 세우면 어찌어찌 또 자리가 생기긴 하더라고. 그렇게 거의 매일 요술 잠자리를 하며 그 집에서 살았지.

당시 우리 집 전세 보증금이 50만 원이었는데 시동생, 그러니까 네 작은 아버지가 결혼을 한다는 거야. 그래서 당장 어떻게 해. 돈이 없는데. 보증금 50만 원에서 40만 원을 빼서 네 작은 아버지 결혼을 시키고 우리는 10만 원 보증금에 한 달 월세 7만 원을 내고 계속 그 집에 살았어. 그랬더니 네 작은 아버지, 그 40만 원 장모에게 갖다 주고 처갓집에 얹혀살더라. 네 작은 아버지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와서 처음으로 인사 오던 그날. 시간이 흘러 잊힐 만도 한데 참 잊히지가 않아.
그날은 엄마에게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냄비에 숟가락 두 개 걸친 비빔밥이 새 며느리를 맞이하는 이 집안만의 풍속인지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 네 작은 엄마가 친정아버지를 대동하고 온다는 말에 이것저것 음식 준비를 해서 나름 푸짐하게 한상을 차려 점심을 먹었어. 친정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저녁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그 냄비 비빔밥이 생각나는 거야. 저녁 상 차릴 준비를 하고 밥을 안치려고 바가지를 들고 쌀을 푸러 가면서 엄마가 할머니께 물었어.


 "어머니, 남은 밥이 많은데 저녁에 밥은 하지 말까요?"
 "얘는, 그래도 어떻게 새 사람이 오는데 찬밥을 주니?"


 그때 참 서운하더라. 할머니께서 조금만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자고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엄만 웃으면서 저녁밥을 지었을 텐데. 어차피 엄만 바가지를 들고 쌀을 푸러 가는 중이었으니까.







 

 

 



 

 

 

 



 


 

 


 

이전 03화 옥상에 심어 방금 따 온 회 한 접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