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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Oct 30. 2020

닥치는 대로 한다는 건 나를 버려야 가능한 거야


이렇게 안기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두 번째 서운했던 거?

그 얘긴 참 가슴이 아파.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흉터로 남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때 일은 서운함이 상처 그대로 남아서 생각할 때마다 진물이 흘러.
너 낳고 이듬해 봄에 네 외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때는 네 아빠가 방송국 다니시기 전이고 엄마도 일이 없던 때라 세 식구 모두 너 크는 재미만 보고 하루하루 살던 때였어.

할머니께 허락을 받고 외할머니댁에 갔지. 외할머니댁에 가서 보니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외할머니께서 팔도 다치셨더라구. 외할머니 병이 차도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며 이래저래 지내다 보니 한 2주가 지났더라고.

아빠가 빨리 오라고 편지를 하셨더라.

편지 받자마자 네 외할머니가 아프신 팔로 맷돌에 갈아 건 메밀묵을 하시는 거야. 이거 해서 줄 테니 얼른 가라시면서. 네 할머니가 건 메밀묵을 참 좋아하시거든.

그 길로 외할머니 집을 나섰어.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친정 왔다가 그냥 가는 거 아니라고 이것저것 싸주시는 외할머니를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어.

그 당시 우리 집은 말이 서울이지 논바닥 한가운데에 버스에서 내리면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딱 한채 있는 그런 집이었어. 너를 등에 업고, 건 메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이것저것 외할머니가 싸주신 것들을 들고, 또 한 손에는 네 기저귀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갔어. 걸어가다 보니 집이 보이는데 네 아빠가 나오는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 같더라구. 난 네 아빠가 마중을 나오는 줄 알았는데 집에 다 와 갈 때까지 네 아빠가 안 보이는 거야. 집에 들어가서 묵 함지를 땅에 내려놓고 양손에 든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할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아이고, 난  하도 안 오길래 아예 안 오는 줄 알았지. 그래서 애비에게 가서 애나 데려오라 했지."


하시면서 엄마 등에 업혀 있는 너를 쏙 빼서 안고 들어가시는 거야. 친정어머니 아파서 친정 다녀온 며느리에게 어머니 어떠시냐는 말 한마디 없이 말이지. 엄마도 모르게 그 자리에 서서 할머니 등 뒤에 대고 외할머니 욕을 막 했어. 아프려면 차라리 죽든가. 왜 죽지도 않고 아파서 날 내려오라 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그러고 나니 그제서야 네 아빠가 증조할아버지방에서 나오면서 한마디 하시더라.


"왜, 더하셔?"




-왜 참고 살았냐고?

글쎄, 왜 그랬을까? 열일곱에 결혼하셔서 큰 아들 낳고 작은 아들 뱃속에 있을 때 6.25가 터져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남편 기다리며 시아버지 모시고 두 아들 키운 네 할머니 인생이 안돼서였을까.
아니면, 여덟 살 이후부터 아버지 정 모르고 살아온 네 아빠에게 마누라까지 잃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들을 남편처럼 자식처럼 생각하는 네 할머니와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네 아빠 사이에서 며느리, 아내로 살면서 힘들 때마다 생각했어.

'내가 애들만 키워놔 봐라. 한 3년만 혼자 살게 할 테니.'


그러다 애 낳고 키우면서는


'내가 애들 결혼만 시켜봐라. 석 달만 혼자 살게 할 테니'


그런데 지금은 네 아빠 보면 불쌍해.


세월이 손 잡고 걷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만들어 주었다


생각해보면 네 할머니께서 집안 살림 다 해주시고 너희들 밖으로 나돌지 않게 안에서 단도리 잘해주셔서 엄마가 마음 놓고 나가서 일 할 수 있었어. 엄마 소원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 10시간 자는 것일 만큼 몸은 힘들었어도 할머니 덕분에 너희들 걱정은 안 했으니까.
엄마 가게 하기 전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는 거 같아.

하도 여기저기 나타나고 사라지고 해서 그 당시 엄마 별명이 '비행기 아줌마'였어.

너 닥치는 대로 한다는 말 들어봤지?

닥치는 대로 한다는 말은 내가 없다는 말이야.

그건 나를 버려야 할 수 있어.


사실 그냥 이대로 쓰러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땐 계절이 바뀌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꼈던 것 같아. 물건을 싣고 버스를 타고 다녔기에 분명 차창 밖으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내 몸이 더워지고 추워져야 또 한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았으니까. 계절은 그냥 창 밖의 풍경과 함께 지나가는 거였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지나쳐 왔던 많은 것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지나치지 않고 멈추어 서서 그때를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아.
할머니 하고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어. 그래서였나 봐. 할머니 쓰러지셔서 햇수로 5년 대ㆍ소변 받아낼 때도 이상하게 그게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가끔 이렇게 큰 집에 앉아 있다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나. 할머니 살아계실 때 이렇게 큰 집에서 모셨어야 하는데.

그러면 미운 정보다 고운 정이 좀 더 들었을 지도...


-지금 엄마는 어떤 시어머니냐고?

그건 네 올케에게 물어봐야지.

분명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그 자리가 되어봐야 그 자리의 무게를 알 수 있다는 거야. 

엄마가 며느리일 때는 몰랐던 시어머니 자리.

난 며느리 자리만 무겁고 힘든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 자리도 그렇게 편하기만 한 자리는 아닌 것 같아. 요즘 젊은 사람들 직장 다니랴 애 키우랴 좀 힘들어야지. 손주들이 이뻐서 내가 키워준다고 키워주긴 하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할머니 자리와 엄마 자리는 다를 거야. 엄마는 니들이나 네 올케나 자기 일 하면서 자식 키우고 그렇게 예쁘게 사는 거 보면 참 대견하고 멋져 보여. 다만 가끔 너무 바빠서 밥도 못 먹었다 소릴 들을 때면 그저 밥이나 잘 먹고 다녔으면 하는 마음뿐이야.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니까 밥심 그거 절대 무시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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