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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Oct 30. 2020

스뎅 다라이와 재봉틀


큰 며느리와 작은 며느리의 혼수

엄마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께서 시댁 어른께 인사를 다녀오라고 하셔서 아빠랑 다녀왔는데 다녀오고 나서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
그 시댁 어른께서 무슨 새색시가 어른이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하느냐고.

그 시댁 어른, 엄마가 대답을 안 했으면 새색시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더라고 하셨을 양반이야.
그리고는 그 말끝에 네 할머니께서 당신은 며느리 인물도, 혼수도 남과 같이 못 봤다고 하시더라.

그 이후로 엄마는 다른 사람 혼수 구경 절대 안 해.

- 작은 엄마 혼수?
 네 작은 엄마야 혼수 잘해왔지. 작은 엄마 결혼할 때 엄마가 하도 혼수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안 하니까 네 할머니께서 큰 며느리인 엄마를 붙들고 작은 며느리 혼수 자랑을 하시더라. 마치 이제야 진짜 며느리 얻으시는 것처럼 신나 하시던 네 할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 그때 할머니는 엄마 들으라고 하시는 소리가 아니었어. 진짜 좋으셨던 거야. 그때 할머니 표정이 그랬어. 악의가 하나도 없어 보였거든. 생각해보면  참, 아무것도 모르시는 양반이셨어.


- 작은엄마 혼수 안 궁금했냐고?
 안 궁금했다면 거짓말이겠지. 너도 알겠지만, 엄마는 한번 안 한다고 하면 안 하잖아. 아마도 자존심 때문이었을 거야. 그건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엄마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었으니까. 그런데 작은엄마 혼수를 우연히 볼 계기가 생겼어. 친정집에 얹혀살던 작은아버지가 몇 년이 지나 자기 집을 얻어 이사를 했어. 이사 간 집에 할머니께서 다녀오셨는데 작은엄마네 이불 홑청을 다 뜯어오셨더라고. 옛날에는 때 타지 말라고 이불이나 요를 광목으로 싸서 덮었거든. 그 이불이나 요, 겉에 싸는 것을 홑청이라고 해. 너 시집갈 때 엄마가 해 준 목화솜 양단 이불 알지? 엄마가 네 혼수 이불 시치며 얼마나 좋았던지. 내가 못해가지고 온 혼수 내 딸은 다 해 줄 수 있어서...
엄마는 이상하게 지금도 신혼 이불만 보면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 입은 새색시가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앉아있는 모습이 생각나. 그걸 보고 있으면 엄마 얼굴도 빨개지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빨개진 얼굴로 할머니께서 뜯어오신  이불 홑청을 다 삶아 빨아서 네 작은 엄마네 가서 시쳐 주고 왔어.
그때 처음 본 거야.

네 작은 엄마가 해 가지고 온 살림을.

너 왜 그 발 재봉틀 기억나니?

그래. 맞아.

니들이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한다고 버리라고 했던 그거.

엄마가 왜 발 재봉틀이랑 옛날 스뎅 그릇들 쓰지도 않으면서 이사 다닐 때마다 끌고 다녔는지 아니?
작은 엄마네 집에 처음 갔을 때 엄마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재봉틀이었어. 손 재봉틀이 아닌 발로 구르는 재봉틀이 그렇게 좋아보이더라구. 네 동생까지 태어나서 한 방에 다섯이 복작거리며 사는 우리 집에 비하면, 둘만 사는 신혼집은 특별한 뭔가가 없어도 있는 그대로 천국인데 피아노에 재봉틀에... 참, 그때 기분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더라.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는 네 작은엄마가 엄마에게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도 이상하게 밉고 그렇더라. 그렇게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큰 스뎅 다라이를 보게 됐어. 난 고무 다라이 하나로 이거 했다 저거 했다 돌려쓰고 있는데..

그때 그 스뎅 다라이. 참.. 탐나더라니.


내 손으로 장만한 내 혼수



그렇게 맘에도 없었던 작은 엄마 혼수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기를 쓰고 살림 장만을 했어.

비록 결혼할 때는 빈손이었지만 내 혼수는 살면서 내가 장만한다는 생각이었지. 

우선 스뎅 그릇 열두 개 한 세트를 월부로 샀어.

네 작은엄마는 혼수로 스뎅 다라이 두 개 해왔으니까 엄만 한 세트로 샀지. 그리고 그다음에  발 재봉틀을 샀어. 그걸로 너희들 원피스 만들어서 입히고 했는데 기억 안 나? 재봉틀 의자에 앉아 발을 구르면 왠지 오르간 연주를 하는 것 같았어. 엄마에게 재봉틀은 연주가 끝나면 예쁜 원피스 하나가 뚝딱하고 나오는 마술상자였어. 처음엔 오기로 샀지만 살면서 너희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준 고마운 존재였지. 그래서 엄마가 옛날 물건들을 잘 못 버리는 거야. 그것들 살 때마다 너무 힘들게 사기도 했고 힘든 만큼 나를 버티게 했던 추억이 담겨 있어서.


옷이 아니라 추억을 지어 낸 재봉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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