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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없는 성장, 짧아진 직장 수명

by 최성호

경제는 성장하는데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이를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공장은 자동화로 채워지고,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신한다. 남아 있는 일자리조차 더 높은 기술과 숙련을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일의 문은 좁아지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직장 수명도 짧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 당연한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조직 개편과 외주화, 프로젝트 계약이 일의 기본 단위가 되었고, 기업의 생명주기조차 개인의 수명보다 짧아졌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단순하다. 직장은 짧아졌고, 인생은 길어졌다. 이 간극을 메우는 방법은 결국 ‘직업 다변화’다.


여기서 직업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본업의 경쟁력을 지키되, 세컨드 커리어와 삶의 일을 통해 소득원과 역할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를 갖추라는 것이다. 하나의 기둥이 무너져도 집 전체가 쓰러지지 않도록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 바로 그것이 지금 40~50대에게 절실하다. 우리는 경력의 정점에 서 있는 동시에, 조직 변화의 파도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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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만 해도 인생은 비교적 단순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입사해 성실히 다니면 은퇴까지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됐다. 퇴직금과 연금은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정년까지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일종의 성공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 매출은 늘어나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해외 이전과 자동화가 채용을 대체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의 수명은 개인의 수명보다 짧아졌다. 이제는 평균 수명 100세를 살아야 하는 시대. 하나의 직업, 하나의 소득원으로 인생 전부를 책임지기는 불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고용 없는 성장’은 점점 더 뚜렷하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경제성장률 1%당 평균 6.5개의 일자리가 생겼지만 최근에는 5.4개로 줄었다. 수치상으로는 작은 차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거대한 경제 규모에서 이는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제조업의 고용 흡수력은 줄었고, 서비스업 역시 일부 고부가가치 분야를 제외하면 늘지 않는다. 결국 ‘성장은 있지만, 일은 없는’ 모순적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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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충격을 준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에 떨고, 기업은 구인난을 호소하지만 서로 원하는 조건은 맞지 않는다. 그 결과 플랫폼 노동, 단기 계약직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개인이 장기적인 커리어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활력도 떨어뜨린다.


결국 한국 사회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단순한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삶 전체의 불안정성이다. 직장은 짧아지고, 인생은 길어지고,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긴 수명을 살아야 하는데, 안정적인 기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적 모순 앞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의 직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멀티 트랙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본업만으로는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하기 어렵기에, 세컨드 커리어와 자기 성장을 위한 삶의 일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하나의 직업이 무너져도 다른 길로 전환할 수 있는 힘, 다양한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능력, 그리고 돈이 아닌 보람과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자기만의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멀티 트랙 인생은 나를 지켜주는 안전망이자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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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용 없는 성장과 짧아진 직장 수명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평생직장’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오히려 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다양한 일을 나답게 이어갈 것인가”다. 그 질문에 답을 찾을 때, 우리는 100세 시대를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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