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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17. 2023

김대리는 퇴근하면 사장님

사장이 되기로 결심하다!

세상을 그리 오래 살아보진 않았지만 크고 작은 위기들을 겪어보며 느낀 것은 악조건 속에서도 언제나 기회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IMF, 2008년 금융 위기, 미세먼지 등 각종 악재들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내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고, 매번 그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부러움와 후회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한 번쯤은 나도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코로나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배달 업계가 호황을 맞을 즈음 자영업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와중에 스마트스토어도 아닌, 배달 음식점을 창업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이번 기회도 놓쳐버릴 것 같았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난 사실 코인의 기회도 놓쳐버린 IT 업계의 비운아였으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배운 거라곤 약간의 마케팅과 경영 지식 정도였기에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창업을 준비했다.


'창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대한 모험처럼 느껴지지만 의외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연일 쏟아지는 배달업 관련 뉴스 기사와 상승 곡선을 그리는 데이터가 잘 될 거라는 걸 입증하고 있었고, 여기에 이유 없이 솟구치는 나의 자신감은 덤. 실패해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걱정은 주변인들의 몫이었다. 부업이 유행하면서 쇼핑몰이나 온라인 강의 등으로 추가 수입원을 꾸린 사람들은 많았지만, 오프라인 음식점을, 그것도 국밥집을 시작하겠다는 사람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은퇴하면 치킨집을 오픈한다는 농담을 많이 하곤 하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흔치 않다 보니 모든 우려와 관심을 한눈에 받았다.


코로나가 날로 확산되며 재택근무 돌입, 모임 인원 제한 등의 키워드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제대로 오픈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당시 시장 선점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빠른 실행 속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창업을 결심하고 아이템 구상부터 가게 오픈까지 단 3개월 만에 끝냈다. 퇴근 후에 매일같이 부동산을 뛰어다니며 매물을 찾고, 레시피 수업을 들으면서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다. 더불어 오픈과 맞물려 결혼까지 했다 보니 주변에서 헤르미온느의 모래시계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대로 몰두한 덕분에 오픈 첫날 끊임없이 울려대는 배달 주문 소리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영업이 아니고 오토바이를 탔어야 했다. 우리 가게에 오는 모 배달원은 휴일 없이 매일 10시간 이상을 근무하면서 1시간에 최대 10개 정도를 배달하는데, 개당 4천 원을 수입으로 가져간다고 생각해 보면 월 1천만 원은 넘게 버는 것이다. 모두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성인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이라면 가구당 월 4천은 벌 수 있고, 한 3년만 바짝 고생하면 서울에 자가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 배달원은 신림동에서 한식 가게를 운영하다가 코로나 이후에 아내분에게 가게를 넘기고 본인은 전업 배달원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가게를 운영하면서 배달하는 것보다 더 큰돈을 벌긴 했지만, 투자금과 각종 세금, 운영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등을 생각해 본다면 언택트 시대에 가장 소자본을 들여서 큰돈을 만진 사람은 배달원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배달업의 호황기는 길지 않았다. 올 5월, 정부에서 엔데믹을 선언하면서 거리에 가득 찼던 오토바이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나도 비슷한 시기에 가게를 매도했다. 아직도 가끔 식당에서 '띵똥 배달의 민족 주문!' 소리가 들리면 몸이 움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피식 웃곤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매각에 대해서 EXIT 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법인보다는 규모가 많이 작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경영한다는 의미에서 법인 못지않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에 성공적인 EXIT을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가게를 운영하기 전과 후의 내 모습도 굉장히 많이 변했다.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던 나는 좀 더 대담해졌으며, 위험 속에서도 1%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기 싫어서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일하면서 보냈던 투잡러의 삶은 어찌 보면 지금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밥벌이하고 살기엔 내게 허락된 삶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커리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주었던 지난 3년 동안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전 출근할 땐 김대리,
퇴근하면 국밥집 사장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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