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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23. 2023

통장에 구멍이 난 건 아니겠죠?

본격적인 배달 전문점 오픈 준비

부동산 계약을 끝내고 영업 신고증 지위 승계와 사업자 등록증 발급까지 마치니 큰 산 하나를 넘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넘은 산이 동네 언덕 정도였다는 걸 그다음 날 깨달았다. 주방 공사부터 업소용 비품 구매까지 난관의 연속이었고, 심지어 오픈일까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와 비용들이 매일 서프라이즈! 하면서 나타났다.


나는 일을 할 때 계획을 중요시하고,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대비해 플랜 B, C까지 생각해 두는 철저한 J형 인간이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거나, 신사업을 운영할 때도 모든 일은 미리 세워 둔 계획 안에서 진행되었고,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예상했던 리스크 중 하나였기 때문에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내가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하더라도, 계획은 늘 틀어졌다. 엑셀 시트에 빼곡하게 To do list를 작성하고, 예상 지출 내역에 각종 포털과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가격 정보로 예산을 짜 놔도 추가 요금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매번 예산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했다.


하다 못해 에어컨 청소만 하더라도, 이미 선지불까지 완료했는데 실제로 뜯어보니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둥 갖가지 말을 붙이면서 추가금을 받아갔다. 업소용 물품이 배달올 때도 마찬가지다. 운반비도 구매자가 따로 부담해야 하는데, 웃긴 게 트럭에서 가게로 옮기는 건 함께 옮겨줘야 한다. 이동을 도와줄 남자 없냐고 짜증 내는 건 다반사고 주차비까지 요구하는 기사도 있었다. 주방 설비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의 말을 보태지 않아도 어땠을지 자영업자 분들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이 업계는 부르는 게 값이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에 상주하다시피 했었는데,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 그저 '이것저것 많이 찾아본 사람 1'일 뿐이고, 준비를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눈탱이 맞는 건 모두가 똑같았다. 결국 예비비마저 다 써버렸고, 통장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어딘가에 돈이 새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럴 리가 있었다. 목록을 하나하나 훑어 내려가 봤지만 은행 거래 내역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한 달도 채 운영하지 않은 국밥집의 설비를 그대로 인수받았기에 별 다른 공수 없이 조금만 손봐서 운영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 '손보는 것'에 의외로 많은 돈이 들었다. 대체 뭘 했길래?




배달 전문점은 인테리어보다는 위생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는 가게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기도 하고, SNS에 자주 언급되면서 많은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매장 영업이 중심인 곳은 맛뿐만 아니라 손님이 공간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인테리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여기에 창업 투자금 대부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배달 전문점이라면?


우리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의 95%는 배달원과 직원이다. 간혹 5%의 포장 손님이 가게를 방문하지만 그 사람들은 가게의 인테리어가 예쁠 때 호감을 느낄까? 아니면 깨끗한 주방을 보았을 때일까?


나는 부동산 매물을 확인하면서 바깥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어도 주방에 벌레가 들끓고 기름때가 화석처럼 굳어있는 곳을 많이 보았다. 이 기억 때문에 배달 주문할 때마다 매장도 함께 운영하는 곳인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우리 가게는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보니 그 어떤 곳보다 깨끗하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독산동에서 최고로 깨끗한 주방을 가진 가게가 되자란 목표를 세우고 인테리어보다는 위생에 초점을 맞추어 방역과 청소에 많은 돈을 들였다.


가게는 좁은 골목길 안, 오래된 건물 1층에 위치하고 있다. 반경 500m 내에 다양한 식당과 주점들이 있었는데 굳이 들어가 보지 않더라도 백종원도 진저리 치고 가겠구나 싶은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우리 건물은 주인 할아버지께서 깨끗하게 관리를 하셨지만 주변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아무리 열심히 쓸고 닦아도 그 동네를 갈아엎지 않는 이상 인간 몸의 몇 만 분의 일 밖에 안 되는 벌레들은 어떻게든 우리 가게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청소와 소독이 제일 시급하다고 판단이 든 나는 인터넷에서 주방 후드까지 정기적으로 청소가 가능한 업체들을 찾아 견적을 받고 계약을 마쳤다. 이는 비싸도 상관없었다. 깨끗하기만 하다면!


그다음은 벌레 소탕 차례. 내 눈에 바퀴벌레만 안 보일 수 있다면 얼마를 들여서라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물 전체 방역도 고려를 했어야 하는데, 비용 문제 때문에 옆 식당이나 위층의 가정집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자비로 간다.


방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업체의 경우, 초기 퇴치 비용이 많이 드는데 건물 전체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작은 중소 업체를 찾던 와중에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벌레 퇴치계의 달인 '갓병기'님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신과 마찬가지인 존재로, 이 분 덕분에 2년 10개월 간 벌레 걱정 없이 장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비용이 좀 들더라도 청소 및 방역 업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관리 받는다면 사장님의 스트레스는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빠른 회전을 위해서는 동선이 생명


장사를 개시하기 전까지는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 나 혼자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리, 포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동선이 중요했다. 우리 가게는 가정집을 개조한 곳인 데다가 기존에 운영하던 친구들이 동선 상관없이 설비를 해놓는 바람에 간택기나 수도 위치를 변경하는데도 돈이 꽤나 들었다.


배달 전문점은 1인이서 운영하게 된다면 ㄷ자 모양의 좁은 공간이 편하다. 간택기와 조리대를 마주 보고 설치하고 조리대 하단부에 포장 용기 수납공간을 배치한다면, 조리 후 바로 뒤돌아서 포장하고 배달원한테 전달할 수 있다. 많은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서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메뉴의 종류가 많거나 직원이 3명 이상이라면 동선이 엉킬 수 있어서 추천하지 않는다.


공간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공사부터 하지 말고, 음식이 만들어지고 포장되어 나가기까지의 모든 단계를 나눠서 동선을 설계한 뒤 최적의 위치에 주방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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