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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31. 2023

뭐를 많이 멕어야지 뭘

직원 채용과 건강한 근로 환경 조성하기

“이장 동무! 주민들도 행복해하고 마을도 이렇게 잘 돌아가는데 대체 이토록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뭡니까?” 백발이 성성한 이장은 먼 곳을 쳐다보며 걸쭉한 강원도 사투리로 말한다. “뭐를 마이 멕여야지 뭘.”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이장은 기본적인 '식(食)'을 지키고, 이를 조화롭게 분배함으로써 좋은 리더십이 어떤 건지 보여줬다. 화려하거나 어려운 말이 필요 없다. 그저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면 된다.


나는 늘 구직자의 위치에 있다가 처음으로 고용인이 되었다. 타이틀은 '사장'이지만 관련 경력은 10년 전 아르바이트가 전부이고, 배워야 할 위치에 있는 상황에서 경력자를 채용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직원은 자주 교체 될수록 힘들고 어렵다. 좋은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동막골처럼 직원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적절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계속 다니고 싶은 직장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근무 조건 구성하기


'많이 먹여야지'라는 말을 회사에 적용시켜 보면 급여부터 복지, 사내 문화까지 다양한 근로 조건을 포함할 것이다. 한데 이 업계의 채용 공고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오는 수준이었다. 주 6일에 일 12시간 근무는 기본이고, 초과 근무 수당을 챙겨주기는커녕 최저 임금 미달의 월급이 떡하니 적혀 있는 곳도 다반사였다. 커뮤니티에는 이런 근무 조건을 걸고 채용이 잘 안 된다고 푸념하는 글이 가득했다.


나는 회사를 고를 때 그곳의 문화가 어떤지, 연봉은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 근무 조건을 조목조목 따져본다. 역할이 사장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회사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것들을 무시한다면, 비겁하고 모순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조건이 비용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직원들은 회사의 기본 자산이고 자산이 잘 운용된다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영업 시작 전이라 매출과 순이익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수익률을 낮춰서라도 근로기준법은 무조건 맞추자 라는 생각에 기존에 다니던 회사들을 참고하여 아래의 근로 조건을 구성했다.


- 최대 근로 시간은 초과 근무를 모두 포함한 52시간

- 22시 이후 근로 및 주 40시간 초과 근무 시 1.5배 지급

- 주휴 수당 지급

- 연차 15개 지급 (반차로 나누어 사용 가능)

- 일정 매출 이상 달성 및 명절 시 상여금 제공

- 매년 연봉 인상

- 식사 및 간식 무제한 제공


<아르바이트 대상으로 사용하던 급여 대장으로 엑셀 시트에 근무 시간만 넣으면 자동 계산 되게끔 설정했다.>

보면 딱히 새로울 것도, 좋은 것도 없다. 고작 기본만 맞춰주면서 유난을 떤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는 기본만 지켜줘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정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동일한 조건을 제시했고, 덕분에 그 어렵다는 채용을 단 일주일 만에 마쳤다. 아르바이트생은 세 번 바뀌긴 했지만 정직원들은 가게를 문 닫는 그날까지 함께했다. 여담이지만 직원들은 연봉 인상이나 상여금보다는 연차 지급에 대해서 굉장히 반겼는데, 대부분 여태 원하는 날짜에 맘 편히 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월에 하루 정도 더 쉰다고 해서 가게가 망하거나, 순이익이 급감하지 않는다. 겁먹지 말자.




건강한 근로 환경 조성하기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신청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식당업에서는 초보자였고, 어쭙잖은 지식과 '사장'이라는 이유로 이모님들에게 지시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포팅하는 역할을 자처하면서 계급장 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사실 말이 서포팅이지 튀김통이나 바닥 청소, 설거지 등 다들 하기 꺼려하는 허드렛일이 대부분이었다.

<청소만큼은 백종원 선생님이 급방문을 해도 꼬투리 잡힐 일 없도록 관리했다.>


그리고 실제로 잘 먹는 데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애초에 사장이라는 놈이 맛집을 좋아하고, 엥겔지수가 굉장히 높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 1회 정도는 도넛, 베이글 같이 이모님들께서 평소에 자주 먹기 힘든 메뉴 위주의 간식을 제공했고, 주말은 워낙 바쁘기도 하고, 매번 같은 가게 음식을 먹으면 지겨울 수 있기 때문에 치킨, 피자, 삼겹살 등 타 업장 음식으로 대체했다. 평일엔 식재료비를 따로 제공해서 이모님들이 드시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만들어 드실 수 있도록 했다.

<가게 오픈 2개월 후 호텔 뷔페에서 첫 회식을 가졌다.>


우리 가게에 근무하는 정직원 이모님들은 모두 조선족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배달원이나 손님이 말투만 듣고 무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배달업체에 즉각적으로 컴플레인을 하거나, 때로는 실제 가족이니 존중해 달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대처했다. 난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직원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덕분에 회사를 다니면서도 안정적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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