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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Sep 07. 2023

첫 리뷰, 1점 받았습니다.

우당탕탕 영업 1일 차

2020년 6월 20일, 3개월 간의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개업하는 날이 밝았다. 긴장되는 탓에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부터 가게로 향했다. 전날 준비를 거의 다 해놨기에 밥 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 시간보다 무려 5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진짜 내 가게를 여는구나 싶은 마음에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함께 몰려오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본사 직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장사를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었지만. 넘치는 근자감으로 가게 상태를 '영업 중'으로 변경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주문 소리가 가게에 울려 퍼졌다. 메뉴를 확인한 뒤 머릿속으로 레시피를 차근차근 복기하고 최선을 다해 조리해서 배달원에게 전달했고, 역시 난 못하는 게 없다며 자신감에 취해있었다.


그런데 첫 주문을 무사히 보내고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가게 전화와 휴대폰 벨소리가 연신 울려대는데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전화를 받았는데 프랜차이즈 대표님께서 굉장히 상기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 가게 오픈한 거예요?
지금 배민에 첫 리뷰가 달렸는데 1점이에요.


전화를 끊자마자 배달의 민족 앱을 접속하는데 휴대폰을 든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내가 대체 무슨 실수를 한 거지? 무슨 이유로 1점이 달린 거지?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르다가 갑자기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놓쳤던 영수증의 한 부분이 번쩍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첫날 처음으로 달린 눈물의 1점 리뷰>


취향이 뚜렷한 MZ 세대를 타깃 하기 위해서 밀면 메뉴에 '오이 빼주세요' 옵션을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영수증에 나와있는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조리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옵션에 나와있는 내용을 무시하고 배달을 보낸 것이다.


배달 전문점에서는 리뷰와 평점이 오프라인에서의 입소문 역할을 대신하면서 향후 가게의 흥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전에 맛본 손님이 쓴 '맛있다'는 리뷰와 별 5개의 평점을 확인을 하지 않으면 주문이 꺼려지는 건 손님 입장에서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리뷰는 배달 전문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리뷰가 없는 막 개업한 가게의 경우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1점 리뷰가 달렸다. 그것도 첫 리뷰에.


곧바로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은 했던 것 같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찼던 이는 어디 간데없고 대체 왜 이렇게 사나 자책하는 나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그래도 해보는 데 까지는 최대한 수습을 해보자 라는 생각에 음식을 다시 만들어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배달원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보다는 직접 사과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에 직접 배달을 갔다. 개업 날부터 가게가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발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진심을 알아준 손님이 상황을 이해해 주시긴 했지만 이미 남겨진 리뷰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방법은 단 하나. 솔직한 마음을 담아 댓글을 남겼다. 회피하거나 남탓하지 않고 실수를 100%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작성했다. 실제로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 형관펜을 잔뜩 사서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영수증의 요청사항 란과 옵션 란에 표시를 해가며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첫 리뷰가 1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업 첫날 장사는 주문 수 51건, 총매출 1,118,500원을 찍으며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진부한 이야기긴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담긴 사과와 행동에서 나의 진심이 묻어났는지 며칠이 지나서 그 손님이 다시 주문을 한 것이다! '오늘은 오이 실수 안 하실 거죠?' 위트 있는 요청사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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