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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21. 2023

상권, 그것이 문제로다.

배달 전문점 최적의 장소 찾기

배달 음식 자체가 1인 가구에서 수요가 높기 때문에 원룸촌을 1차 타깃으로 두고, 대학생들이나 신혼부부가 많이 거주하는 곳은 배제했다. 국밥은 아재 입맛의 대명사인 음식이다. 물론 젊은이들도 좋아하지만 배달 음식이라는 것을 놓고 봤을 때 떡볶이, 치킨과의 싸움에서는 밀릴 것 같았다. 나만 해도 점심시간에 종종 국밥을 먹으러 가도, 배달로는 시켜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배달 전문점은 매장 영업하는 식당과는 달리 유동인구보단 어떤 가구가 많이 밀집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보다는 나잇대가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찾아야 했다. 네이버 부동산을 켜고 원룸/투룸을 선택한 뒤 월세 매물이 가장 많은 동네를 메모장에 적어 나갔다. 봉천동, 독산동, 왕십리 등 총 10군데의 후보지 중에서 기존 지점이 있는 곳들을 제외하고, 내가 원하는 조건과 부합하는 곳을 추리고 나니 독산동과 신대방 만이 남았다.


배달 전문점은 가게의 위치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손님이 방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장 영업하는 가게가 꺼려하는 지하나 2층도 괜찮고 인적이 드문 장소도 괜찮다. 배차를 빨리 받고 싶다면 배달원들이 선호하는 대로변 1층이 좋긴 하다. 하지만 나는 위치 관계없이 월세 부담이 적은 곳이 1순위였고, 망해서 권리금을 받지 않는 가게가 2순위였다.


대략 한 달 동안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독산동과 신대방 두 동네를 오가며 부동산을 찾아 연락처를 남기고 실매물 확인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데 매번 매물을 확인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게 말이 돼요?


스무 곳이 넘는 업장 중 단 한 곳도 깨끗한, 아니 적당히 더러운 곳조차도 없었다. 여태까지 내가 밖에서 뭘 먹은 건가.. 외식에 대한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해충방지 업체와 계약한 곳도 마찬가지였다. 벌레는 주기적으로 방역할지언정, 청소는 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가게들 태반이었다.


좌절을 거듭하던 와중에 독산동에 있는 한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국밥집 매물이 나왔는데 오픈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폐업하는 바람에 가게는 깨끗한 것은 물론이요, 메뉴가 동일하니 따로 설비 없이 바로 들어가서 운영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달려갔다.


부산까지 내려가 2백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돼지국밥과 겉절이 레시피를 사 와서 호기롭게 창업한 20대 두 청년의 꿈은 원대했다.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줄 서는 맛집이 되고, 큰돈에 가게를 팔아넘겨 파이어족이 되는 것.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일 고기를 삶고, 김치를 담그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힘든데 코로나 때문에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한 명이 다리를 다치면서 일을 못하게 되자 둘 사이의 우정도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오픈한 지 보름도 채 안 돼서 문을 닫았다.


주방과 화장실 공사에만 몇 백을 쓰고, 집기도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것 그대로였지만 그 친구들은 가게를 빨리 팔아넘기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모든 설비를 단돈 100만 원 넘기겠다는 파적적인 제안을 했다. 가격적으로 이보다 더 메리트 있는 매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계약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일까..?


독산동.

서울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곳이다. 매물 확인 차 처음 들렀을 때 마치 중국의 한 마을에 여행온 기분이었다. 여권 없이도 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외국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다. 매물 바로 앞, 옆, 뒤, 그 옆, 그 옆 옆 가게도 모두 중국어 간판의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반경 300m 내에 한국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방문한 날, 매물 바로 앞에 위치한 주점에서 싸움이 났다. 중국어로 고성이 오가는데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대로변이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한적한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서 밤 10시에 가게를 마감하고 혼자서 퇴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동산에 일주일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고, 다른 가게들을 더 찾아봤지만 원하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위생과 치안,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밤낮으로 고민한 끝에 결국 위생 앞에 무릎 꿇었다.


매일 일하면서 대왕 바퀴벌레를 만날 바엔
차라리 깜깜한 밤 독산동 골목길을 질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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