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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Oct 21. 2023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배달 가게의 사계절

어른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뭐든 사계절은 겪어봐야 안다고. 이는 가게를 운영하는데도 적용이 된다. 계절이 돌고 돌듯 가게에도 패턴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갑자기 장사가 안 되는 시기가 왔다고 조바심 내거나, 매물로 내놓기보다는 다음 계절이 오기를 기다려 봐야 한다. 그렇게 사계절을 지내다 보면 성수기와 비수기는 언제인지, 날씨의 변화에 따른 손님들의 선호 메뉴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운영 노하우를 쌓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장사를 예측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선배 사장님들이 1년은 무조건 버텨라고 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신정부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는 배달량이 많지 않다. 명절도 있고 입학, 개학 등 지출이 많아지는 시기다 보니 다들 지갑을 꽁꽁 싸매기에 바쁘니까. 하지만 벚꽃이 필 때쯤이 되면 그동안 길거리에 잠잠했던 오토바이 소리가 잦아진다. 장사가 잘되는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만물이 활개 하는 봄이 오듯이, 우리 가게도 날이 더워지는 4월 중순부터 배달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여름이 되면 최고치를 찍는다. 겨우내 정적이 가득했었던 가게는 누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 주문 소리로 가득해진다. 비수기 대비 매출의 차이가 최대 30%까지 나는 해도 있었기에 이 계절은 가게 운영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 보니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준비할 것들이 많다. 먼저 가게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 구좌 수를 늘리고, 노출 지역도 바꿔가며 테스트를 진행한다. 더불어 당근마켓과 같은 지역 기반 커뮤니티에도 꾸준히 글을 게재하여 홍보한다. 여기에 맛과 서비스 퀄리티가 저하되지 않도록 인원 충원도 필요하다. 기존 직원들과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의 손발을 맞추기 위해 성수기 시작 1~2개월 전에 뽑아 일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 또한, 여름철 인기 음식들 위주로 세트 메뉴 구성을 다시 개편하는 것도 중요하다. 똑같은 구성이라도 이름을 위트 있게 다시 설정한다면 충분히 새로움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티비에서 아이스커피 광고가 흘러나온다. 여름이 왔다는 소리다. 여름은 우리 가게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배달업의 최성수기이다. 가게를 하기 전까지는 국밥이라는 메뉴 자체가 뜨끈한 국물 요리이기 때문에 찬바람 부는 겨울에 가장 많이 팔릴 거라 기대했는데, 실제 경험해 본 바로는 그 반대였다. 아마도 날이 덥다 보니 불 앞에서 요리하는 것도 힘들고, 입맛도 저하되어 외식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가게는 여름을 타깃으로 한 밀면이라는 메뉴가 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밀면 주문량도 같은 속도로 증가하는데, 그렇다고 국밥이 아예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국밥의 주문량도 상당한데 식당에서 여름 한정 메뉴는 자주 볼 수 있지만 겨울 한정 메뉴는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신없이 바빴던 여름이 가고 9월이 되면 그 많던 주문량이 거짓말처럼 줄어든다. 처서 매직이 배달에도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석이 다가오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매출에 기운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 사시사철 잘 되는 대박집 아니고서야 어느 곳이나 비수기는 존재하기에. 다만 비수기에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운영비 관리가 필요하다. 다람쥐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땅 속 깊이 저장해 두고 봄이 오기 전까지 아껴 먹는 것처럼 가게도 여름동안 벌었던 돈을 잘 비축하여 비수기에 마이너스가 나지 않도록 잘 배분해서 써야 한다.


겨울은 평균적인 주문량으로 치면 가을과 비슷하지만 체감으로는 가장 저조한 달이다. 배달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리는 경우, 오토바이 운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는 그치면 끝나지만 눈은 다르다. 바닥에 눈이 쌓이게 되면 2~3일은 장사가 어렵다. 2021년 겨울은 유난히도 눈소식이 많았는데 밤새 내린 눈에 도로가 꽁꽁 얼어붙어 1월에만 열흘 넘게 장사를 못하게 됐고, 매출도 반토막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밖에 눈이 내리는지 확인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일기예보를 보며 마음도 들쑥날쑥했다.


그다음 해에는 눈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구청에 요청하여 길목마다 염화칼슘을 배치하고, 눈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빗자루를 들고나가 언덕길을 열심히 쓸었다. 다행히도 지난해보다 눈이 덜 내리기도 했고, 구청에서도 열심히 제설차를 가동하며 눈을 치웠기에 장사를 못하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배달 가게에게 겨울과 눈이란 지긋지긋한 존재이다. 이렇게 눈과의 한바탕 싸움을 끝내고 나면 날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봄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게의 성수기도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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