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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Oct 22. 2023

가게를 팔아야겠습니다.

리스크 테이킹 vs 헷지

올 겨울은 나에게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가게에 딱히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매출은 최저치를 찍었고, 지난 2년 간의 겨울과 비교를 해봤을 때도 확연히 차이나는 숫자였다. 작년 말부터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주문 건수가 점점 낮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로 급격하게 떨어진 적은 없었다. 혹시나 음식맛이 변한 걸까 싶어 가게에서 판매되는 모든 메뉴를 조리하여 직원들과 함께 맛봤지만 이전과 동일한 맛 그대로였다. 대체 무슨 문제인 걸까?


일단 운영 시간을 좀 더 늘리고, 배달의 민족에서 나온 새로운 광고 상품도 신청하여 추이를 지켜봤으나 결론적으로 돈만 날린 꼴이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틀 휴가를 내고 풀타임으로 가게에 머무르면서 직원들의 조리 방식이나 서비스 대응에 대해서도 점검했지만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다 음식을 픽업하러 온 배달원을 붙잡고 요즘 현황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배달이 너무 줄어서 10시 전까지는 공치는 경우가 허다하고, 다른 일을 찾고 있는 배달원들도 많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가운데 주요 경쟁사로 꼽아두었던 10곳의 데이터를 뜯어봤다. 다들 전월 대비 주문 건수가 하락했고, 심한 곳은 1,000건 넘게 떨어져 있었다. 리뷰 게시 수에 대한 그래프도 하락세였다. 어지간해서는 망하기 힘들다는 교촌이나 BBQ 등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의 숫자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이다. 사람들이 배달을 시켜 먹지 않는다.


그렇다. 거리두기 해제를 본격화하면서 사람들은 배달 대신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사에서도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의 거래 지수가 매월 하락하고 있다는 소식을 앞다투어 전한다. 매출 하락이 비단 우리 가게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에 엔데믹을 선언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왔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일상 회복을 맞은 지 꽤 됐기에 지금 당장 엔데믹을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였다. 


그러나 엔데믹은 내가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홀 매장으로 전환할 수도 없는 법. 따라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마이너스까지 감수하면서 가게를 좀 더 운영해 볼 것인가, 아니면 미련 없이 매도할 것인가. 전자를 선택하게 될 경우, 여태까지 벌어둔 돈도 다 잃고 다시 원점으로 시작해야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 매출이 회복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지는 모르겠지만,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가게의 수가 가파르게 늘어날수록 희망이 보이는 어마무시한 적자생존의 경쟁이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가게를 매도하거나 폐업을 하게 되면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미래 기대 수익을 버리게 된다. 여기서 미래 기대 수익은 얼마나 될지 추측해 보자.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는 맛과 경험, 그 이상을 배달 음식에서 제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오직 편리함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배달료의 압박과 오프라인의 경쟁력도 뛰어넘으면서까지 편리함이 승리의 깃발을 잡을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고민한 결과, 내 대답은 No다. 아무리 잘 돼도 이전과 같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결정이 내려졌으면 빠르게 행동으로 옮길 차례이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가게의 가치는 하락할 것이고, 권리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주변 부동산에 싹 다 전화를 돌려 매물을 등록해 두고, 아프니까 사장이다와 당근마켓과 같은 커뮤니티에도 매일 글을 게재하여 매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얼마나 빨리 팔고 싶었으면 문 앞에 가위를 거꾸로 세워두기도 하고, 욕설이 적힌 종이를 숨겨두는 미신까지 총동원했다.


노력 덕분인지 미신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물을 올려둔지 정확히 2주 만에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천안에서 배달업으로 크게 성공한 청년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우리 가게를 선택한 이유는 3년 전 내가 이곳을 계약한 이유와 동일하다.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해서.


그렇게 나는 가게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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