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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Oct 22. 2023

가게를 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2년 10개월 차 자영업자의 운영 결산

일명 죽음의 계곡, "데스 밸리(Death Valley)"라고 불리는 이 사막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자연이 만든 절경 덕분에 많은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이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여진 이유는 햇빛이 작렬하는 오후엔 50도까지 올라가는 악명 높은 기온과 건조한 사막 기후 때문에 동식물들이 생존하기 어려워서이다.


"데스 밸리"라는 말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쓰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은 5년 차 생존율이 30%를 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기간이 7년으로 늘어날 경우 생존율은 반절로 더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위기 구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는 흐름을 그래프로 그리게 되면 마치 협곡의 지형 같기도 하고, 생존이 어려운 특성도 마치 "데스 밸리"를 떠올리게 하기에 그렇게 부르곤 한다.


이는 음식점업에서도 통한다. 창업한 10개의 음식점 중 3년 후에도 문을 닫지 않는 곳은 단 2개뿐이라는 극강의 생존율은 "데스 밸리"와도 같다. 나도 결론적으로 보자면 "데스 밸리" 구간을 넘어서지 못했다. 배달업을 통해 돈을 번 것과는 별개로 3년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패배자의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일까. 가게가 빨리 팔렸으면 하는 마음에 미신까지 총동원했었지만, 막상 인수자가 나타나고 나니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무릎 꿇은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시원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현실에 벽에 부딪혀 사장님이라는 삶을 멈추게 되었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 10개월 간의 여정을 돌아보고자 한다.




얻은 것


자신감

나는 본래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나 자신에 대한 의심도 서슴지 않으므로 새로운 일을 맡게 될 경우 잘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내 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공포감이 더 크다. 따라서 끊임없이 학습하고 업무에 몰두한다. 이러한 점은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커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허덕인다.


가게를 할 때도 엄청난 사전조사를 끝낸 다음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긴 했지만, 준비 기간 내내 나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채근했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도 뚜껑을 열어보면 별 거 아니었구나 싶을 때가 많다. (물론 걱정한 것 대비 별거 아니라는 뜻이지 정말 별 게 아니라는 건 아니다.) 이러한 깨달음 덕분에 의심보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더 키우게 되었다. 가게를 하면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은 미래에 있을 모든 도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금전적 여유

사실 가게를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이점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다. 자신감이나 사람은 회사나 취미 생활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지만, 회사원들에게 금전적 여유는 주식이나 로또와 같이 대박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얻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가게 수익과 회사에서의 급여까지 포함해서 월에 최대 2천만 원까지 만져본 나는 금전적 여유를 통해 심적인 안정감도 함께 얻었다.


그리고 번 것에 일부를 주변에 베풀면 더 크게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늘 잊지 않았다. 매출이 잘 나오거나, 주식으로 뜻밖의 수익을 올렸을 땐 회사에 커피라도 돌리거나, 가게엔 직원들 보너스로 지급했다. 가끔 고맙다는 인사도 잘 안 하는 사람들한테까지 왜 돈을 쓰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세상은 의외로 좁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잃은 것


신체적 건강

가게를 하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의외로 잃은 것도 상당하다. 그중 가장 큰 것이 건강이다. 이전 에피소드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가장 처음 얻은 질병은 방아쇠수지증후군이다. 그 이후로도 목 디스크와 손목 터널 증후군까지 차례로 진단을 받으며 신체적인 한계에 많이 부딪혔다. 이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게에서 주방일을 하던 이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말 하루만 일해도 통증과 피로에 파스를 달고 살게 된다. 여기에 장사까지 안 된다면? 정신적 건강까지 해칠 것이다.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이 없다면 돈을 수천, 수억을 벌어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 투잡을 하고 있거나, 계획 중인 사람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건강을 꼭 챙기길 바란다.



시간적 여유

투자러라면 시간적인 여유는 꿈꿀 수도 없는 단어이다. 평일엔 회사에, 주말엔 가게에 묶여있는 삶이었기에 쉬는 것도, 어딜 놀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 그나마 나는 자식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커리어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있었다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것이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중도포기 했을 수도 있다.


투자러에게 워라밸이나 삶의 균형이란 사치라고 생각한다. 큰 고민 없이 단순히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투잡에 도전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확률이 더 크기에.



자영업의 환상

회사 출근할 때마다 들른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늘 생각했다. '아, 회사 가기 싫은데 나도 카페나 한 번 차려볼까?' 솔직한 말로 사장님들은 놀고먹는 줄 알았다. 회사만 다닐 때에는 카운터 앞에서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결제만 하거나, 하루에 한 번 가게에 들러 돈만 수금해 가는 세상에 1%도 될까 말까 한 사장님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이다. 이 환상은 가게를 오픈하고 30분 만에 처절히 깨졌다.


경험해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누구나 다 환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든 쉬운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찰나의 시간만 보고 품은 환상, 그 뒤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편협한 시각으로 다른 이들의 경험을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자영업을 통해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지만 이 과정에서 겪은 모든 경험이 더 나은 나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거라 믿는다.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끝없는 성장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순간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전 19화 가게를 팔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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