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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Sep 08. 2021

흔들리는 부모가 찾아온 날엔.

-모차르트를 만난다.

 학부모가 학생과 함께 상담을 왔다.   

   

 “재능이 있나요?”     


 예능과 관련하여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재능”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공부에 재능이 있나요?” 는 잘 안 물어봐도 악기 연주에 소질이 있는지 그림 그리는 것에 재능이 있는지 운동을 하기에 적합한 체격인지는 궁금하다. 아마 예능에는 재능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도 재능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나는 과연 음악에 재능이 있는 것일까?”     


 뭔가 잘 안됐을 때는 당연하거니와 학창 시절 내내 음악공부를 하면서도 잊을만하면 항상 다시 등장하곤 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내 주변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받는 기대주라고 일컫는 아이들도 콩쿠르만 나갔다 하면 상을 휩쓸어 오는 아이도 자신은 재능은 없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을 하니 범인인 나로서는 ‘도대체 재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운명인 건지 장난인 것인지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시기에 ‘영재’ 붐이 일었다. TV에서는 각 분야의 영재들이 창궐했고 교육계에서는 영재를 위한 지원사업이 활성화되었다. 내 논문 주제는 이 영재 붐을 타고 ‘음악 영재’가 되었다.     


 재능에 대해서 수십 번을 생각해오던 사람으로서 음악영재에 대한 공부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학문적으로 정의 내리기 다소 어려울 것 같은 추상적인 주제를 수십 년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영재성’을 정의하는 여러 학자의 이론 중에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턴버그(Sternberg 1985)의 연구였다. 그는 영재로 언급이 되려면 다섯 가지 기준(수월성, 희귀성, 생산성, 검증 가능성, 가치)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희귀성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특별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영재는 우리가 평범한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희귀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음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범인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잘못인 것인가?           



‘타고난 재능’의 상징 모차르트.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던 없던 모차르트에 ‘재능’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특히, 음악계에서 타고난 재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은 대명사처럼 등장하곤 한다. 오보에의 모차르트, 피아노계의 모차르트, 가끔 지역명 뒤에 오기도 한다. 제주도  모차르트, 제천 모차르트... 이쯤 되면 모차르트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재능이라는 단어 대신 쓰이는 대명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모차르트라는 이름이 음악영재의 심벌이 된 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큰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본다. 이 영화는 1985년 개봉된 영화로 클래식 음악영화 중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영화다. 아마데우스의 영화음악 시디는 6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1위를 했다. 오직 클래식 음악만으로 가득 찬 영화음악 시디가 650만 장이나 팔린 것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굉장히 큰 개가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아마데우스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평소 때라면 잠을 자고도 남았을 늦은 시간이었는데 TV에서 정신이 반쯤 나가 보이는 모차르트가 당구를 치며 작곡을 하는 모습을 본 순간 졸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린아이 눈에 비친 천재의 모습은 이상하지만 매력적인 모습이었고 타고난 재능이 있는 예술가는 범상치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영화 이후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넌 뭔가 좀 독특해.” “너 좀 이상해.”이런 소리를 하면 나는 그것을 즐겼다. 그런 소리들이 넌 뭔가 특별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영화 아마데우스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참으로 대단했다.     


 아마데우스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영화적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영화 아마데우스 속의 모차르트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모차르트는 내게 선천적 재능의 심벌이었고 신화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재능에 관한 일화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인데 대표적인 몇 개만 이야기해보자면 대충 이렇다. 모차르트는 만 3세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4세 때는 작곡을 시작했으며 6세 때는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깨우쳤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그가 태어난 1756년에 그의 이름이 ‘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의미의 ‘아마데우스’가 된 이후부터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 세계를 단지 재능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극성 아빠가 일군 모차르트의 신화.



“매일 정오 2시. 어린 모차르트의 뛰어난 재능을 확인하세요. 어떤 곡을 가져와도 초견 연주 가능합니다. 주어진 선율 악보에 즉석에서 반주를 작곡해드려요.”          


 이 글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가 어린 모차르트의 연주회를 홍보하기 위해 쓴 광고 글이다. 흡사 장사꾼의 멘트와 다를 바가 없다.

     

 모차르트는 6세 때부터 누나 난넬 그리고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 연주 여행의 기획과 실행은 모두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드의 머리에서 나왔다.

 

 자식이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면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재 최상위층 지능을 가진 영재의 가정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평범한 지능의 부모가 뛰어난 지능을 가진 아이와 소통이 어려워 고통스러워하거나 아이의 재능을 이해 못하고 질병으로 인지하는 경우도 상당수인 걸 보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누나의 연주를 들은 후 옹알이하는 아기를 보고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훌륭한 음악가이자 교육자인 레오폴드의 안목이 주요했다고 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레오폴드가 훌륭한 음악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작곡가이자 연주가였고 음악교육자였지만 모차르트의 교향곡 악보를 보고 작곡하는 일을 그만뒀다. 모차르트 일가의 음악가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하나로 충분하다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레오폴드는 자신의 인생까지 걸며 모차르트에게 헌신했고 이는 어린 모차르트가 유럽 전역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레오폴드는 모차르트가 성인이 된 후에도 극성 아빠였다. 수십 통의 편지를 써가며 작품 이야기부터 경제생활 그리고 연애까지도 관여했다. 후세의 연구가들이 레오폴드의 교육방식에 대해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사리분별도 못하는 어린아이를 마차에 태우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곡예 같은 연주를 시킨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모차르트의 성공엔 레오폴드의 뛰어난 안목과 적극적인 추진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재능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성인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지나친 관섭을 힘들어했고 레오폴드가 모차르트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둘의 사이는 더 나빠졌다.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와 결혼을 강행한 후 둘의 사이가 더 서먹해졌지만 레오폴드는 빈에서 성공한 모차르트를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와 레오폴드의 사이는 결국 회복되지 않았고 모차르트는 레오폴드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레오폴드가 죽고 나서부터 모차르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관념이 없던 모차르트는 다작을 했음에도 낭비가 심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고, 재력가나 귀족에게 잘 보이는 데 소질이 없던 그는 말년엔 비참할 정도 외롭게 이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에 90년대 디바 휘트니 휴스턴을 인생을 조명한 다큐 영화 ‘휘트니 보고 모차르트의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적이 있다. 가수였던 어머니 씨씨가 휘트니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혹독하게 훈련시킨 모습이나 오빠와 아빠까지 그녀의 음악 사업에 뛰어든  그리고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낭비와 약물중독 가정사 등의 문제로 생의 마지막 즈음엔 몸과 정신이 병들어 죽어간 모습까지 데칼코마니같이 닮았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이게 진짜 반복되는 거라면 재능을 타고난 음악가들의 운명은 잔인하고도 슬프다.     





사회생활을 한창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너... 음악 전공한 걸 후회하지 않니?”          


 나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의아했었다.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학교를 때려치우겠다고 생떼를 부리던 시절엔 대꾸조차 안 하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모든 질풍노도가 지난 후에 이 질문이 왜 이제야 나오는 것인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내 대답은 “아니.”였고 엄마는 그냥 조용히 미소만 지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참 짠하다. 사실 부모도 자식에 대한 모든 결정에 확신이 없다. 그저 아이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어쩌면 재능 개발과 학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쓰임이 없는 재능은 휴지 조각일 뿐이며 빛나는 재능도 발견되지 않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어떤 이는 부족한 재능을 더 많은 노력으로 이겨내고 또 어떤 이는 가족의 희생이나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타고난 재능은 그저 말 그대로 그냥 ‘재능’ 일뿐이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성공이나 행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오늘도 재능이라는 유니콘 앞에 서 있는 부모에게 장황한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다.


 “재능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이가 음악을 좋아하면요. 잘 상의해서 결정을 하셔야 하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자신의 결정 앞에서 매번 흔들리는 부모와 같이 학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학생이 잘됐으면 하는 기도와 바람뿐이다. 그저 그저... 잘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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