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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Sep 18. 2021

숨 막히게 어색한 순간엔.

-바흐를 만난다.

 아빠가 은퇴 선언을 하셨다. 사실 은퇴는 이미 10년 전에 하셨지만 이번엔 진짜 일을 안 하시겠다고 하신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계속 일을 찾으러 다니시던 분이었다. 건물 관리직부터 경비일까지 집에서 말린다고 들을 분도 아니지만 정말 이곳저곳 열심히도 다니셨다.     


 아빠가 일을 구하러 다니실 때 동생과 나는 아빠의 비서 노릇을 해야 했다. 핸드폰으로 문자 보내시는 것도 겨우 하시는 분이라 일을 찾아보는 일부터 이력서를 쓰는 것까지 동생과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감정표현을 잘 안 하는 동생과 달리 나는 입으로 다 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지라 아버지와 만나기만 하면 언성이 높아졌다. 아빠가 일을 안 한다고 우리가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일을 하셔야겠냐. 나도 내 일이 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는 매번 이렇게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일을 해야지. 일 안 하면 뭐할 건데!!?”          


 정말 평생 일밖에 모르시는 분이긴 했다.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정적 인분도 아니니 정말 일을 안 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실 수밖에. 할 일 없이 거리를 맴도는 아버지가 안쓰러워서 나도 나름 애를 썼다. 문화센터도 알아보고 여행도 다녀보고 살가운 딸도 아닌데 이모티콘을 써가며 카톡도 보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면접 보러 오라는 문자를 더 반가워하셨고 작은 소일거리라도 생기면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이제 진짜 일을 놓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나에게 이번 선언은 처음 것과 달랐다. 처음 일을 그만두셨을 때는 이제 그만 쉬세요. 인생을 즐기세요. 이런 멘트가 술술 잘 나왔는데 이번엔 말도 안 나온다. 10년 전과 다르게 독립해서 아빠랑 부딪칠 일도 별로 없고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게 전부일 텐데 나는 왜 그 흔한 위로의 말조차 못 건네는 걸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냅다 나는 이제 일 안 한다!라고 선언하신 아버지는 나와 눈도 안 마주치시고 TV만 뚫어져라 보신다. 엄마가 담근 열무김치 얻으러 온 죄밖에 없는 딸은 눈만 껌벅거리다가 아빠 옆에 어색하게 앉았다. 하아. 이제부터가 정말 난감한 순간이다.    


           

음악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놈의 아버지. 학창 시절의 바흐는 정말 딱 그놈의 아버지였다. 서양 음악사 시간부터 악기 레슨시간까지 바흐 찬양을 하는 선생님들이 꼭 계셨다. 그들 설명 속의 바흐는 음악적 완벽성 은은 물론이려니와 청렴하고 절약정신 투철하며 심지어 가정적이기까지 한 인간적으로도 철저하게 완벽한 인간이었다.     


     

“나는 베토벤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거 같으나 바흐 앞에서는 감히 두려워 얼굴조차 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은 전 세계를 묘사했다.”     


“만약 베토벤이 인간 중 거인이라면, 바흐는 신이고 기적이다.” 

    

“부디 편하게 잠드시오. 당신의 명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로시니, 브람스, 멘델스존. 베토벤, 텔레만...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상당수가 그를 찬미하고 찬양한다. 바흐는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아버지며 신앙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클래식 음악의 모든 근원은 바흐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들이 바하라는 존재를 찬양했다고 하면 감히 저는 바흐 음악 별론 데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딱 그랬다. 다수의 사람들이 바흐 음악이 최고라고 말하니까 그저 저도 좋아요 하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라는 의문만 가득한데도 말이다.     


 19세기 이후 가장 많은 음악인들에게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바흐는 1685년 동부 독일의 아이제나흐에서 출생했다.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바흐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라 보통 바하라 함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바흐가 생존했을 때 바하라는 이름은 [음악가 가문]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다고 볼 정도로 바하라는 성을 가진 음악가가 많았다. 17세기엔 바흐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라 음악가가 넘치는 바흐 가문이라는 뜻이었다.     


 바흐가 모차르트 못지않은 천재성을 타고났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연구자도 있지만 그에 대한 증거자료가 부족한 편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악기 하나 다루는 것은 기본이고 웬만한 교회 연주자는 바흐 가문에서 다 배출되는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흐의 재능을 당연시 봤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성이 언제부터 발현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다

.     

 그럼에도 우리의 바흐가 다른 바흐들과 달리 특별한 건 그가 뛰어난 작곡 실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맏형은 오르간 둘째 형은 트럼펫 셋째 형은 오보에 연주자였고 형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족들이 연주자였지만 바흐와 같은 뛰어난 작곡 실력은 없었다. 그에 비해 바흐는 오르간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도 교회에서 쓰이는 음악을 직접 작곡했다는 것이 다른 형제들과 다른 특이점이라 하겠다.     


 바흐는 평생 교회 안에서 연주자 또는 음악감독으로 일하며 1000여 곡을 남겼다. 그리고 곡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바흐의 곡은 모두 완성도가 높다라는 평을 받는다. 기악이면 기악 성악이면 성악 교회음악이던 세속 음악이던 장르를 따지지 않고 그 어디 빠지는 곡이 없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후대의 음악가들은 그의 음악 앞에서 무조건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흐 음악이 사람을 울리는 이유.          



 모두가 찬양하는 바흐 음악이라지만 나는 그의 음악이 참 답답했다. 그가 작곡할 때 사용하는 작곡 기법인 대위법의 영향일지는 몰라도 듣고 있으면 재미가 없다 못해 지루했다. 학창 시절에는 바흐 음악이 지루하다고 감히 입 밖으로 내서 말할 수 없었다. 실기 지정곡으로 바흐 소나타가 나왔을 때 이 위대한 곡을 왜 그따위로 연주하냐는 듯한 선생님들의 따가운 눈총 앞에서 바흐 음악에 정이 안 간다는 소리를 하는 일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찬미하는 바흐 음악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졸업한 나는 그 후도 한참을 바흐 음악 하면 학을 땠다. 그러던 내가 바흐 음악에 빠지게 된 건 굉장히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일어났다.  

    

 유독 추웠고 유독 여러 가지 일로 힘들었던 날이었다. 친구 커플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앞에선 깨가 쏟아지고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터라 차 밖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지휘를 공부하고 있던 친구의 남자 친구는 갑자기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틀었고 여느 음악 하는 사람들과 같이 바흐는 너무 완벽한 작곡가라며 떠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힘들어서였는지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때 바흐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과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바흐 음악이 나에게 찾아오기라도 한 듯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전 세계에 수많은 바흐 음악 덕후 중 한 명이 되었다.     



 바흐가 작곡할 때 사용한 대위법은 생각할 것이 너무나 많은 엄격한 음악 형식이다. 쉽게 말하면 1 더하기 1은 2인데 그 안에서 새로운 걸 창조하라는 형식이랄까. 엄격한 규율 안에서 음악을 작곡하다 보니 멜로디의 진행이 드라마틱하거나 강렬하지는 않다. 하지만 형식을 걷어내면 그의 음악이 들린다.     


 바흐 음악은 너는 할 수 있어. 괜찮아 잘될 거야.라고 끊임없이 용기를 주는 친구가 아니라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쓱 다가와 내 무릎에 손을 올려놓는 친구 같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다가와 사람의 눈물샘을 터트린다. 바흐 신화가 계속되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순간 그의 음악에 위로를 받은 사람이 많아서 일 것이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흐 음악은 아직도 여러 이론가들이 연구하는 분야이고 작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그의 작곡 기법이나 그가 사용한 화음이 얼마나 천재적인 것인지 가늠도 안되고 그의 음악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의 음악이 좋아졌다. 나에게 바흐 음악은 위대하고 대단한 음악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는 음악이고 내 마음의 기둥이 되어주는 음악이다. 여기저기 헤매다가 지쳐 있을 때 항상 같은 자리에 묵묵히 있어 주는 존재랄까.     


 요즘엔 나의 스승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내 제자들에게 바흐를 찬양하고 다닌다.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들을 때가 많은 어린이들에게 바흐 음악이라니 어떤 이는 헛짓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지루해요. 재미없어요. 어려워요를 연발하는 어린이들에게 바흐 음악을 권해본다. 바흐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걸 알기에 지금부터 계속 권해보는 것이다. 나중에 이 아이들에게 힘든 시기가 오면 위로가 돼주고 힘이 돼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바흐는 사실 생존 당시엔 지금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가 받는 칭송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와 같이 음악가의 길을 가게 된 아들들 조차도 그의 음악을 낡고 형식에 갇힌 음악이라고 생각해 그와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는 기록을 보면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에 대한 현재 평가는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내가 지금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시초는 도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거야?라는 질문이었다. 이해가 안 되고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해했더니 어느 순간 그의 음악을 느끼게 된 것이다. 바흐 음악의 힘은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TV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딸에게 말 한마디 안 건네는 아빠를 보며 내가 그를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숨 막히게 어색한 부녀관계가 한순간에 좋아질 리가 만무하다.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다. 아빠의 은퇴 선언은 어쩌면 우리에겐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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