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얼굴, 말하지 못한 분노

12화 침묵이 된 감정은 결국 나를 향한다

by 유진오

어떤 날은 화가 올라와도 말하지 못한다.

말하는 순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그 화가 나를 삼켜버릴까 봐 두려워서다.


그럴 땐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표정이 굳고,

눈빛이 멀어지고,

마음이 딱딱하게 얼어붙는다.


예전에, 친정엄마와 있었던 작은 일이 생각난다.

아주 사소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내 마음속 오래된 상처를 건드렸다.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없었다.

화를 낼 수도, 속상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 침묵했다.


얼굴이 싹 굳었고,

방 안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아무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긴장한 채 조용해졌다.


그날 나는 알았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분노는 꼭 소리쳐야만 드러나는 감정이 아니다.

말을 삼킬 때, 그 감정은

더 조용하고 단단하게 몸 안에 남는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말했다.

“감정은 억누르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말을 실감했다.

며칠 동안 몸이 아팠고,

이유 없는 피로와 무기력에 휩싸였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나를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

이제는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바로 말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라도 내 마음을 꺼내는 연습.


“그때 그 말이 조금 서운했어.”

“내 기분이 딱딱하게 굳었었어.”


그 짧은 문장들이

침묵으로 굳었던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분노를 말하는 건 두렵다.

하지만 침묵이 항상 더 나은 선택은 아니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침묵이

때로는 나를 더 깊이 다치게 하기도 하니까.


오늘은 마음속 감정을

조금만 더 말로 옮겨보려 한다.




오늘의 여백

당신은 언제, 말하지 못한 감정으로 굳은 얼굴을 마주했나요?

그때의 마음을 조용히 꺼내어 남겨주세요.

지금은 말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