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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May 29. 2023

화요일에 쓰는 편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눈을 떴어요. 제일 먼저 당신을 찾았어요. 당신이 씻는 소리가 들리고 당신이 출근복으로 갈아입는 소리가 들려요. 당신 기척만이라도 안심이 되네요. 출근을 서두르던 당신이 되돌아와 입을 맞췄죠. 순식간에 평온이 찾아왔어요. 당신은 그런 존재예요. 평온을 주는 안식처 같죠. 당신은.



여러 번 당신에게 고백했지만 당신은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당신이 날 대하는 마음에서 아빠의 마음을 느껴요. 원하는 걸 뭐든 해주고, 챙기고, 맛있는 걸 양보하고, 필요한 걸 말하기 전 사주죠. 돈이 많았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해줄 사람이란 걸 알아요. 당신은요. 물질적인 것만도 아니에요. 애정도 마찬가지예요. 일찍 아버지를 떠나보내 아버지의 사랑을 양껏 받지 못한 나는 아버지의 사랑에 목마름이 있었죠. 당신의 전폭적인 사랑으로 갈증이 해결되었어요. 당신은 날 위해 모든 걸 퍼주는 사람이니까요. 감히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이에요. 뭐든 아끼지 않고 해주는 당신을 보면 감격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챙길 수가 있지? 나도 당신만큼 당신을 챙기고 있는가?' 반문했는데 자신이 없어요. 당신만큼 날 사랑할 자신도 없고, 당신이 날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어요.



며칠 전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당신이 없었으면 어쩌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요.  당신이 나를 살린 거예요. 당신이 나를요. 병원 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날 보고 당신이 말했죠.

"제발, 내 말 좀 들어."

이제 알겠어요. 내가 얼마나 고집불통이고 말을 안 듣는 사람이었는지를요. 반성해요.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에요. 당신과 오래오래 손잡고 거닐 수 있으니까요. 잦은 병원 출입을 하며 미안해하는 나에게 당신은 말했죠.

"걱정하지 마. 안 버리고 아파도 내가 업고 다닐 테니까."



당신은 여행 좋아하는 날 위해 매주 새로운 여행을 설계해요. 낯선 곳을 좋아하는 날 위해 낯선  여행지를 골라주고요. 예쁜 카페를 좋아하는 날 위해 좋은 카페를 찾아 함께 가 주었고요. 꽃 좋아하는 날 위해 예쁜 꽃 앞에서 멈춰 나를 기다려주죠.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날 위해 걷기 좋은 곳을 추천해 주고 함께 걸어가 주죠. 꽃 좋아하는 날 위해 들꽃을 꺾어주고 물을 갈아주고, 꽃단을 잘라 꽃이 오래가도록 챙겨주죠. 비 오는 날 비에 젖지 않는 운동화를 골라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죠. 운동화 끈이 자주 풀리는 탓에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당신의 등을 자주 만나요. 혹시 느꼈나요? 당신 등뒤는 나의 시선을요. 아니, 당신을 향한 애정을요.



책 읽는 남자가 좋다는 말을 잊지 않았는지 당신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퇴근 후 힘들어하는 날 위해 저녁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싫어하는 날 위해 설거지를 해주고, 일요일 아침 늘어지게 게을러지고 싶어 하는 날 위해 아침을 챙겨주었죠. 축 늘어지는 날 일으켜 밖으로 나가 기분을 정화시켜 주고 행복하냐고 물어봐 주죠. 신기한 건 당신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단박에 행복해지는 마력이 생겨요. 당신은 내가 없으면 못 살겠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꽉 안아 당신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죠. 나와 함께 여행하고 산을 타는 게 좋다는 이야길 자주 해줘요. 친구 중에서 당신이 제일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해맑은 소년 같은데요.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그런 당신이 좋아요. 퇴근해 돌아오면서 세상 밝은 톤으로 '굿모닝'을 외치는 당신이 좋아요. 안부를 물어봐 주고, 아프지 말라고 걱정해 주고, 병원 가라 챙겨주고, 당신뿐이라는 달달한 고백도 해주고, 우린 잘 살고 있다고 만족감을 맘껏 표현해 주는 당신이 좋아요. 당신이 나를 살려요. 당신 덕분에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당신이 날 살게 해요.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파하는 당신을 보며 생각했어요. 이 남자를 위해서라도 건강하자라고요.



아프지 않을 게요. 당신을 위해서라도 나를 챙겨야겠다고 다짐해요. 나를 잘 챙기지 못함이 잘못 배운 탓인가? 글을 쓰면서 잠깐 드는 생각이네요.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참아야 한다고 먼저 배웠으니까요. 아픔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웬만큼 아프면 병원 가는 것보다 참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나를 망치는 것 같아요. 당신 말대로 아픈 건 참는 게 아닌데 말이죠. 가장 어리석은 일인데도 매번 그러고 있더라고요. 이제는 당신 말대로 참지 않을게요.



당신 말 잘 듣는 아내가 될게요. 건강을 챙기고, 일찍 자고, 마음을 잘 정리하고 아프지 않을게요. 집에서는 회사일 걱정 하지 않고, 밖에 나가서도 아이들 점심 걱정하지 않고, 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는 그 순간을 만끽해야 한다는 당신의 말을 기억할게요. 노력할게요.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니까요. 당신이 나를 생각한 만큼의 절반이라도 당신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고 애정하는 것보다 당신을 사랑하도록 할게요.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될게요.



당신을 떠올린 아침,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화요일이니까요.


이제 내가 당신의 우산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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