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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Oct 18. 2020

툴가,
오랑캐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

몽골에게 말걸기 - 열린의사회와 함께 한 몽골의료봉사기


  나는 툴가에게 ‘오랑캐’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 북방 이민족(여진족, 말갈족 등 만주지역에 거주하던 민족들)을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부른 명칭이 ‘오랑캐’였다. 다소 듣기 거북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몽골을 올 때 유일하게 들고 온 책은 이영산 작가의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였다. 작가의 몽골 친구인 ‘비지아’는 알타이산맥에 거주하는 오랑카이족의 후예로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였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였으며, 그들에게 혹은 작가에게 오랑카이족은 매우 용감한 전사로 몽골족 칭기즈칸과 함께 대 몽골제국을 세운 젤메와 수부 타이가 속한 부족이기도 했다.     


  툴가는 몽골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에게 몽골 지도를 그려주며 설명했다. 타원형으로 생긴 몽골에는 여러 부족이 있는데 그 부족을 이해하는 데는 우선 산맥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북동부지역의 대흥안령산맥과 중앙(수도인 울란바토르지역)에 위치한 헨티산맥, 서쪽으로 조금 내려간 항가이산맥, 서쪽 지역의 알타이산맥과 톈산산맥이 있다. 이들 산맥을 중심으로 부족들이 형성되었는데 이 산맥들의 중앙에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밑으로는 고비사막이다. 이들이 산맥에서 힘을 얻으면 초원지대를 차지했고 초원을 중심으로 다른 부족을 점령하는 식이다. 흥안령 산맥 근처에는 타타르족, 메르키트족과 그 위쪽에 몽골족이 있었고, 중앙에는 케레이트족과 나이만족, 서쪽 지역의 알타이산맥을 중심으로 오랑카이족이 있다. 

  

몽골을 다 몽골족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얕은 지식은 아마도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갖고 살아온 당연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흩어져서 각자의 힘을 갖고 서로를 견제하던 이들을 통일한 강력한 정복군주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타임스지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선정한 몽골족의 칭기즈칸이다.    


  초원을 차지한 부족은 이제 제국이 된다. 제국의 힘을 가진 군대는 척박한 땅 초원에서 다시 살기 위해 밖으로 뻗는다. 먹을 것이 많은 남쪽으로 남하하여 동쪽으로 뻗으면 중원이 있고, 서쪽으로 뻗으면 서역으로 가는 무역로가 있다. 몽골제국을 형성한 칭기즈칸의 부대는 서쪽과 동쪽을 차지하고 세계의 대륙 1/3을 차지하는 대제국이 된다. 중원을 차지한 후 원나라라는 큰 성을 쌓는다. 그러나 빛에는 그림자가 있고, 흥함 뒤에는 쇠퇴가 따르기 마련이다. 몽골 비사에 의하면      


“성을 쌓은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유목민의 정체성이 잘 나타난 말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축들과 함께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의 삶은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성을 쌓아 부를 축적하기 위해 전쟁과 정복을 일삼지 말고 이를 경계하라는 조상의 유훈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중원을 차지하고 성을 쌓았으며 나라이름을 ‘원’이라 하였다. 초기 몽골제국을 포함해 200년, 중원의 통일왕국으로는 90년이라는 짧고 굵고 강력한 왕조의 기록을 남긴 채 중원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다시 초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원의 멸망 이후 한족에 의해 명나라가 중원의 안주인이 되나 한족의 지배도 300년을 지속하지 못한다. 1616년 누르하치는 만주족(여진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한다. 그 후 청으로 국명을 개칭하고 건륭제 통치기에는 몽골을 비롯한 신장, 티베트 등을 정복하면서 최대의 전성기를 누린다. 이때 몽골도 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쑨원을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이 탄생하면서 외몽골은 ‘몽골국’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러시아의 백군에 의해 다시 점령되는 수모를 겪는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시대가 무너지자 몽골은 다시 러시아의 지배에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몽골 근대사의 영웅인 수흐바타르가 모스크바 볼셰비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벨라루스군과 중국인을 모두 몰아낸다. 이때가 1921년이다. 


  1924년 11월 26일 몽골 인민공화국이 선포되고 세계 두 번째의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 이때 내몽고는 중국의 영토가 된다. 이미 한족 이민정책 등으로 한족화가 이루어진 내몽고는 독립의 의지가 약했으며, 여러 가지 여건상 독립이 쉽지 않았다. 


  러시아 지배 시기에는 몽골민족의 정체성을 잊게 하려고 칭기즈칸에 대한 교육은 물론, 성(姓)을 갖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자신의 성으로 갖게 하고 그의 자식은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성으로 줌으로 아버지 이상의 조상을 지워버렸다. 칭기즈칸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칸의 역사나 문화를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을 죽였다. 러시아에도 칭기즈칸과 몽골인의 용맹함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독립 당시 몽골의 인구는 64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1990년대 동유럽과 소련의 민주화 혁명의 영향으로 정치. 경제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1992년 1월에는 사회주의에서 탈피한 이원집정부제의 신헌법을 제정한다. 1996년이 되어서야 총선을 거쳐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몽골의 개방은 늦었지만, 그들은 칸 제국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그들의 진취적이고 용맹한 민족성은 아직도 몽골의 산맥과 대초원의 땅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툴가의 성(姓)은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냥 툴가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잘못 부르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며 웃음을 보였다. 툴가는 몽골을 독립시킨 수흐바타르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가난한 유목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마부의 삶을 살수도 있었으나, 그는 중화인민국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한 몽골 근대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러시아 혁명 지도자였던 레닌과의 협상으로 몽골 독립을 지원받아 혁명을 이끈 지도자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나이 서른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위대한 영웅을 기다리는 초원의 부족들은 오랑캐라 불리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냐는 이민족(?) 여인의 질문에 위대한 역사를 그려 보여줬다. 역사가 있으면 미래가 있다.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부족들을 통일시키고 이끌어갈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를 그들은 기다리고 있으며, 그런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똘똘 뭉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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