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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Oct 18. 2020

보드카의 멋

몽골에게 말걸기 - 열린의사회와 함게 한 몽골의료봉사기(12)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부계의 유전이다. 나의 부친은 술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다. 그 사랑이 삶에 대한 도피였는지 유희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자식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가장의 무거운 짐을 술에 의지했고 또 다른 자식의 기억에는 흥을 돋는 즐거움이 함께했다. 아마도 힘들면 힘들어서 기쁘면 기뻐서 술을 찾았을 것이다. 이는 나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어서 이해가 된다. 나는 대체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 톤업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내 기저에 깊은 슬픔이 술과 함께 올라온 기억할만한 날이 있었으니 스물 몇 살의 어느 해였다. 나는 그날 아버지 앞에서 많이 울었고 음식은 이미 토했으니 말이라도 토해야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평소에 하지 않던 말들을 토해냈다고 한다. 물론, 나는 토막토막 기억이 없고, 그 후로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묻지 못했다. 이 사건 또한 목격한 가족에(주로 나의 오 남매) 따라 기억이 다르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좀 따뜻하게 내 심장 귀퉁이에 남아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 철없는 딸의 입에서 쏟아졌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우리 딸이 다 컸구나! 이런 생각이 드셨을지도 모른다. 이심전심의 마음이었을까.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딸은 그 후로 서로가 특별한 마음 한 자락을 내주며 살았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다 알아야만 진실은 아니기에 우리는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바라본 게 맞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술을 마실 줄 아는 내가 좋다.  


  무뚝뚝한 시골 촌부였던 나의 부친은 술이 불콰하게 취한 날에는 뒷주머니에서 오징어도 나오고 찌그러진 반달빵도 나왔다. 우리 오 남매를 불러 모아 놓고 오징어 몸통을 오 등분 하셨다. 그리고 본인은 오징어 귀만 드셨다.

 “아버지는 오징어 귀가 맛있다고 하셨지…. 예에 에에~~” (가수 지오디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의 패러디 버전) 우리 오 남매는 부친을 추억하며 이렇게 랩을 부르곤 한다. 


 70세의 부친은 폐암 판정을 받았다. 그 좋아하던 술을 단박에 끊었다. 술을 끊은 부친이 안쓰러워 나는 부친의 몫까지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오 년이라는 치료 기간을 끝내고 의사에게 마지막 완치 판정을 받던 날. 부친은 의사에게 이거 하나만 물었다.     


“의사 선생님, 나 술 한잔해도 되것소?”    


  부친은 정말 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 과하게 시작하지 않으셨다. 노년에 과한 사랑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어찌 아셨을까? 그런 부친을 위하여 젊은 우리는 많이 마실 이유가 있다. 가족이 모여 술상을 차릴 때면 우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술 한잔해도 되것소?” 


  초원의 남자들은 독한 술을 마셨다. 칭기즈 칸 보드카는 맑고 투명했다. 높은 도수에 비해 순한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데 부드럽다. 진한 향이 목에 걸리는 양주의 도도함도, 투박하지만 다음날 머리가 아픈 동동주의 배신감도 없다.   


  그날의 만찬은 헨티지부 적십자사 주최의 만찬이었고 은드르항 군수가 참석한 자리였다. 서로 기념품으로 족자를 교환하고 현지 가수(이분의 노래 실력은 뛰어났으나 현지 가수인지는 좀 의심스럽다. 왜냐면 자원봉사 기간 내내 적십자사 헨티지부장을 수행하고 있었다.)의 축하 공연이 있는 자리였다. 자리가 자리니만큼 격을 지키기 위해 나의 주사랑은 좀 자제될 필요가 있었다. 아직 깊이를 알 수 없는 보드카와의 첫 만남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곳의 주법(酒法)은 첨잔이었나 보다. 만찬 자리에 조금 늦게 도착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은드르항 군수와 적십자 헨티지부장이 계신 자리에 앉게 됐다. 순전히 술맛만 보려 했다. 그런데 뜨겁게 부드러운 술은 내 입술에 닿기만 하면 목 안으로 술술 잘 넘어갔다. 술잔만 보고 계셨는지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첨잔을 해주셨다. 높으신 분들의 잔을 거절할 수 없어(이 노예근성은 술 앞에선 자의 오랜 근성이다) 홀짝홀짝 받아먹었다. 보드카와의 첫 만남은 대체로 훌륭했다.     


  적십자캠프에서 캠프파이어가 있던 날. 몽골 봉사자가 나의 주(酒) 사랑을 기억하셨는지 보드카 한 병을 챙겨주셨다. 나는 쑥스러운 듯 받아 가방에 고이 모셨다. 열세 살 딸의 안위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엄마는 취하면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보드카의 안위를 챙겨야 했다. 연약한 병에 든 보드카는 케리어 가장 깊숙한 곳에 보드라운 옷으로 겹겹이 싸여 나의 고국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한여름에도 몽골의 밤은 서늘했다.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곳이다. 추운 밤 불 앞에 앉아 마시는 뜨거운 보드카. 그것은 술이 아니라 친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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