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게 마라걸기 - 열린의사회와 함께 한 몽골의료봉사기(13)
만찬에 나온 고기는 수육이었다. 색깔이 있는 향신료를 넣고 (우리식으로 하면 된장) 오래 삶은 듯 껍데기는 쫄깃하니 붙어 있고 살은 육질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 주먹만 한 고깃덩어리가 삶은 그대로 개인 접시에 올려있다. 고기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우리는 의심의 눈초리로 고기를 살짝 뜯어서 먹어 보았다. 역시나 어릴 때 먹었던 그 맛. 부친께서 여름만 되면 복달임을 해야 한다며 거의 반강제로 먹게 한 누린내가 살짝 났던 그 고기 맛과 매우 흡사했다. 보양탕을 모를 듯한 내 옆의 어린(?) 치위생사는 “어, 이거 맛이 꼭 개고기 같은데요.” 한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어찌 개고기 맛을 알아요?” 우리는 깨작깨작 망설였다.
여름이 되면 개 잡는 냄새가 동네에 낮게 깔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개를 잡았다. 개만 잡은 건 아니었다. 명절을 앞두고 동네 어른들은 돌아가며 돼지나 소도 잡았다. 동물농장 수준이었던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는 동네 어른 몇이 간소하게 잡았지만, 돼지나 소를 잡는 날은 동네 잔칫날처럼 북적거렸다. 아주머니들은 뒷짐에 양동이부터 바가지까지 하나씩 들고 오셔서 공짜로 나눠주는 선지를 받아가셨다. 아저씨들은 마당에 걸어 둔 가마솥에 내장을 삶아 술상을 펼쳤고, 고기를 부위별로 나누고 근수대로 잘라서 걸어 두셨다. 퓨리나사료 겉봉투에 둘둘 말린 고기들은 동네 이집 저집으로 팔려나갔다. 어린 나는 호기심이 많아 그 살육의 현장을 쪼그리고 앉아서 보았다. 동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입에 넣어주는 삶은 내장을 받아 먹으며 놀았다.
소나 돼지는 그렇게 펼쳐 놓고 잡아도 개는 달랐다. 개를 잡는 모습은 꼭 한 번 보았는데 그 풍경은 꽤 치명적이었다. 우리 집 옆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나는 여름이면 산등성이에 어린 활엽수의 나뭇가지들을 엮어 아지트를 만들고는 숨어 들어가길 즐겼다. 어른들의 말소리가 능선의 끝에 움푹 파인 웅덩이 안에서 들렸다. 6·25 때는 이곳에 마을 사람들을 파묻었다는 괴담이 있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깨갱 깽 울고 있는 누렁이 한 마리를 검게 그을린 늙은 소나무에 매달고 있었다. 한 번에 죽이지 않고 몽둥이로 매질을 했다. 개는. 컹컹 깨갱 깽 울다가 죽었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그래야 육질이 좋다 했다. 복날에 개 패듯 팬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듯했다. 그때 알았다. 동네 어른들이 그곳에 개를 매달아 두고 잡아서 소나무가 검게 늙어 버렸다는 것을. 왜 하필 나는 거기서 그날 개 잡는 풍경을 보았을까? 개의 죽음은 검었다.
돼지는 짧은 다리를 엑스자로 묵은 후 단박에 멱을 따서 죽였다. 아주 요란하고 째지는 소리를 낸다. 그래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한다는 말이 나온 듯하다. 돼지의 죽음은 붉었다. 소는 끌려 나오는 순간에 눈에 눈물이 맺는다. 소의 울음은 길고 멀리까지 울렸다. 소의 죽음은 투명한 눈물이었다. 나의 부친은 닭 잡는 걸 가장 싫어하셨는데 닭이란 녀석은 머리가 잘리고도 손에서 목이 빠져나가면 마당을 뛰어다녔다. 닭의 죽음은 공포였다. 고기 맛을 알아버린 인간은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낼 식욕을 지녔다.
고기를 앞에 두고 먹기를 망설이는 우리를 눈치챈 통역사가 양고기라고 알려주었다. 몽골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기르던 짐승을 잡아 대접하기를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양고기로 대접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고 했다. 특히, ‘허르헉’이라는 양고기 요리가 있는데 뜨겁게 달군 돌을 철통에 고기와 함께 넣어 익혀 먹는다고 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으로 맛은 좋으나 누린내가 있어 오늘은 수육으로 삶았다고 한다. 양고기라고는 강낭콩만 하게 잘라서 철 꼬치에 찔러 불에 돌려가며 구워 먹는 양고기 꼬치 밖에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제야 고기를 먹었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기르던 짐승을 잡아 대접했던 우리의 풍경과도 닮았다.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주식으로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풀을 찾아 계속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들에게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는 일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에는 여름에 말려 놓은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고기를 오래 끓여서 먹는 설렁탕도 몽골에서 유래 되었다는 말이 있다. 전쟁이나 먼 곳을 떠날 때면 소 한 마리를 잡아 말려 육포를 만든 후 소의 염통에 담고(소의 염통 안에는 말린 소 한 마리가 들어간다고 했다) 길을 나선다고 한다. 밤낮의 기온 차가 크고 건조한 몽골의 기후에 육포는 상하지 않고 잘 마른다. 칸의 군대가 멀리 갈 수 있었던 이유도 염통의 소 한 마리 덕분이라고 했다.
초대를 받는 사람은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잘 받아주는 것이 예의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우리는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성껏 준비해준 만찬에 감사하며 따라주는 술도 고기도 맛있게 먹어주면 최고의 손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