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다 - 열린의사회와 함께 한 몽골 의료봉사기
의료봉사를 마치고 현지 체험을 위해 테를지 국립공원의 적십자 캠프로 가는 길은 멀었다. 금방 간다가 6시간이었다. 조금 쉬면서 지체하면 8시간이었다. 선잠에서 깨어나면 아까 본 초원이 그대로이다. 왠지 운전사가 자꾸 길을 잃는 거 같다. 대한민국의 37배에 달하는 몽골의 길은 가도 가도 초원이었다. 길은 누군가 먼저 지나간 흔적이 길이다. 초원 한가운데는 식당도 화장실도 없다. 오늘 점심은 초원에서 먹는 발열 도시락이다.
자원봉사 일행과 몽골 현지 통역봉사자들을 태운 대형버스 2대는 길을 벗어나 초원으로 들어갔다. 초원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은 왠지 맞지 않는다. 사방천지가 초원이기 때문에 황톳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초원 한가운데로 진입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지구의 중심이 된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코끝으로 느껴지는 허브 향기. 발목을 조금 덮는 풀들은 허브였다. 뜨거운 태양과 서늘한 밤바람에 허브는 아주 단단하고 진한 향기를 뿜어냈다. 허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똥, 말똥, 염소똥……. 사람 똥도 있겠지. 그런데도 참 신기하지. 허브향만 가득했다.
초원에 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조금은 망측스러우나 초원에 꽃을 따러 가는 일이다. 꽃을 따는 데 뭐가 망측스럽냐고? 여자들이 볼일을 보러 갈 때는 꽃을 따러 간다고 하고 남자들이 갈 때는 말을 보러 간다고 한다. 6시간을 내달아온 우리는 남녀 할 것 없이 중심에서 흩어져 멀리멀리 각자의 길로 걷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말을 보러 가고 여자들을 꽃을 따러 갔다.
어린 날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다 급하면, 산에서는 바위 뒤에, 들에서는 논으로 들어가 일을 봤다. 바람이 불어오는 고래실 속에서 오줌을 놓으면 엉덩이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그때의 그 시원함은 단발머리에 빼빼 마른 까만 여자아이의 것이다. 엄마를 따라 산밭에 갈 때면 엄마는 호박잎을 따서 살짝 덮어 두었다. ‘아이 똥은 냄새도 안 나야!’ 시간이 지나 다시 산밭에 가면 반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호박잎 밑에 그것을 엄마는 호미로 살살 훑어 넓게 흙 속에 묻었다. 아이 똥은 산밭의 거름이 되었다. 그게 가능한 곳이 초원이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 대지와 만난다. 앞서가는 남자들을 계속 따라가서는 안 된다. 어느 지점에서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지춤을 내린다. 민망해지는 순간이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 꽃을 따러 가기에 참 좋은 날씨다. 우리는 양산을 들고 꽃을 딸 좋은 장소를 탐색했다. 실제로 꽃을 딸 좋은 땅은 없었다. 초원은 건조하고 풀은 뻣뻣했으며 사방천지 숨을 곳이 없었다. 날벌레 들은 수도 없이 얼굴을 난타했고, 여기저기 똥 천지다. 똥들은 건조한 바람에 잘 말라가고 있었다. 소도 말도 사람도 모두 이 초원에 아무렇지도 않게 똥을 싸고 오줌을 눈다. 그런데도 초원엔 허브향만 가득하다. 나의 엉덩이는 거대한 대지의 여신 품에 간지럽다. 그곳에서 쪼그려 앉아 끝이 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본다.
꽃을 딴 젊음은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점프 샷을 한다. 초원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사이에 오직 인간만이 서서 하늘에 닿으려 몸을 날린다. 무사히 착지를 돕는 중력은 강하다.
우리 일행은 초원에 돗자리를 펼치고 야전식 도시락을 먹었다. 신이 만든 대자연의 초원에서 먹는 도시락은 소나 말이나 양이 풀을 뜯어 먹는 것과 같이 평화로웠다. 도시락을 먹고 나는 돗자리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에 매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허공을 나는 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초원에 누워 내 발자국을 남긴다. 나의 발자국도 바람 속에 흩어진다. 바람 속에 흩어진 내 발자국 가루가 초원에 뿌려진다. 저 초원에 허브향은 이곳을 지나간 많은 영혼의 가슴에 남겨진 발자국 가루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