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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Oct 18. 2020

몽골 초원에서 양몰이 하는 은교

나를 만나다 - 열린의사회와 함께한 몽골의료봉사기(17)


"엄마, 나 양몰이 해도 돼?"

"양이 너를 몰겠다. 안 무섭겠어?"    


  은교는 벌써 양들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처음 몽골에 와서 수박씨 벌레를 보고 “캭캭”거리며 신변 보호를 요청하던 따님은 어디로 갔나? 초원의 날벌레들과 똥들에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던 아이는 지금 저 아이가 맞나? 아주 먼 곳까지 양을 몰고 다닌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가듯 수십 마리 양 떼들이 은교의 움직임에 따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강이 있고 목초지가 넓어서 그런지 캠프 주변에는 수천 마리는 될 듯한 동물들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 울타리가 있었지만, 경계가 하도 넓어서 경계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자유롭게 풀어 놓고도 어디로 없어지거나 무리를 이탈하지 않을까? 다른 집 동물과 섞이지는 않을까?     


  어릴 때 우리 집은 동물농장이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앞에서 돼지우리와 염소우리가 있었다. 출입문이 있던 오른쪽으로는 외양간이 있었다. 왼쪽 헛간 옆에는 토끼집이었는데 토끼집은 조금 높게 올려서 지었다. 토끼는 경계가 심해서 새끼를 낳고 낯선 사람을 보면 새끼를 다 죽이는 습성이 있다. 들이나 산에서 토끼풀을 해오는 일은 우리 오 남매의 일과였다. 엄마는 봄이 되면 병아리를 비닐하우스에 키웠다. 가마니를 둘러 백열등을 켜면 병아리들이 살기에 따뜻한 집이 되었다. 어느 해는 오일장에서 오리를 사 오기도 하셨다. 


  이 중에 제일 무서운 녀석은 염소였다. 염소는 성질이 사나워 맘에 안 들면 때를 부리거나 뿔로 받는 시늉을 했다. 남의 집 염소는 더 무섭다. 학교 가는 길에 염소가 길 앞까지 나와 있으면 지각을 하더라도 먼 길로 돌아가야 했다. 염소는 아침에 산으로 끌고 가 말뚝에 매어놓으면 종일 목줄의 길이만큼 맴을 돌며 놀다가, 먹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저물녘이면 염소와 함께 귀가하는 것도 우리 오 남매의 몫이다. 동네를 온종일 쏘다니며 놀다가 어둑어둑해지면 염소 생각이 나서 어두운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둠 속에 갇힌 숲은 무섭다. 우리가 오기만 기다리던 염소도 매엠맴~~ 지쳐있다. 어느 날은 나무에 목줄이 엉켜 한 뼘도 안 될 만큼 공간에서 목만 빼꼼히 내밀고 있다. 그런 날은 돌아오는 길이 멀기만 하다. 엉킨 줄 때문에 종일 굶은 염소는 황토만 파먹다 싱싱한 풀을 만났으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풀을 흡족하게 뜯어 먹지 않았는데 줄을 당기면 뿔로 받는 시늉을 한다. 속으로 그랬겠지.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들거든요. 주인님!’     


  은교는 뿔이 있는 양들도 무섭지 않은지 한참을 몰고 다녔다. 소몰이하는 몽골의 아이 흉내를 내려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몰이를 한참 한 은교는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양몰이 재밌었어? 무섭진 않았어?"

  "안 무서웠는데. 재밌었어"

  "뭐가 제일 재밌었어?"

  은교는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양들이 뛰어갈 때 궁둥이가 실룩거리는 게 젤 재밌었어. 양 궁둥이가 다 똑같이 움직이는 거야. 특히, 꼬리 안쪽에는 방울 두 개가 폴짝폴짝 뜀뛰기를 해."

  "아이고 맙소사. 그것 때문에 그렇게 뛰어다닌 거니?"


  은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나게 산으로 올라간다. 나는 왜 어릴 때 그런 걸 본 기억이 없을까? 염소의 목줄을 잡고 앞으로만 끌로 다녀서 그랬나? ‘나도 돌아가는 길에는 꼭 양몰이를 해봐야겠어.’라는 다짐을 했다. 어떤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날의 일들도 다시 오지 않겠지. 우리가 돌아올 때 양들은 이미 축사 안으로 들어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PS.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은교에게 다시 물어봤다.

  "은교야. 너 그때 몽골에서 양몰이 할 때 뭐가 젤 재밌었다고 했지?"

  "별로……. 재미없었는데."

  "아니, 네가 양몰이 할 때 양 궁둥이가 실룩거리는 게 재밌었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은교는 시치미를 뚝 떼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 내가 이제 딱 한 번만 말해줄 거야. 잘 들어. 접은 손수건만한 작은 꼬리가 들썩일 때마다 똥꼬가 보였어."

아니, 그런데 왜 나는 또 저렇게 기억하고 있지? 어쨌든, 다시 몽골에 가면 나도 양몰이를 해봐야겠다는 야심에 찬(?) 소망을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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