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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Oct 18. 2020

저 강이 정말 톨강이야?

나를 만나다 - 열린의사회와 함께한 의료봉사기


  4일째 되는 날, 의료봉사를 모두 마치고 우리는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적십자 캠프에서 게르 체험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망망대해 같은 초원지대를 지나 도착한 캠프는 작은 산들이 있었고 폭이 좁았으나 강이 있었고 강 옆에는 수령이 오래된 원시림 같은 나무들이 있었다. 나무가 흔하지 않은 몽골에서 강과 산과 우람한 나무들이 빼곡한 숲을 보다니, 내 상상 속 몽골보다 더 완벽한 모습이었다. 캠프와 강 사이에는 완충지대처럼 넓은 목초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물의 수위가 높아지면 아마도 완충지대까지 물이 차오르는 듯싶었다.  


“아침이면 말들이 저 강에 와서 물을 먹어요. 아주 장관이죠. 가까이 가서 보실 수 있어요.”

“툴가, 저게 강이야?” 강의 폭은 좁았다. 금강이나 영산강 낙동강 심지어는 한강도 얼마나 넓은가? 툴가는 저것이 톨강이라고 말했다.  

“뭐라고? 저게 툴강이라고? 부르칸 칼둔산에서 발원해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흐른다는 바로 그 톨강?” 나는 궁금한 것만 생기면 톨가를 찾았다. 톨가는 툴강을 아는 척하는 내가 신기했는지, 바로 그 톨강이라고 말해줬다.

 

 톨강은 몽골의 성지  부르칸 칼둔산에서 발원한 3개의 강 중의 하나이다. 어린 테무친의 가족이 살았던 오논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헤를렌강, 그리고 서쪽에 있는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툴강. 몽골의 3대 강은 모두 부르칸 칼둔산에서 시작된다. 부르칸 칼둔산은 어린 테무친이 죽음의 고비마다 숨어든 산으로 테무친을 보호하고 키우고 성장시킨 산이다. 몽골인들은 이곳을 성산이라 하여 지금도 외국인과 여자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저 강줄기를 따라가면 그 가장 깊은 골짜기에 테무친을 키운 성산에 다다를 것이다. 그 강줄기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나의 어린 딸 은교는 나의 꼬임에 쉽게 넘어온다. 의지할 것이 모친뿐이거나 나와 비슷한 호기심이 있거나, 어쨌든 우리는 저 강을 가까이에서 보기로 합의했다. 강과 캠프 사이에는 나무 울타리가 있었고, 울타리와 강 사이에는 넓은 목초지가 있었다. 우리는 강을 보기 위해 두 개의 금기를 넘어야만 했다. 금기는 늘 깨라고 있는 것이니, 우리는 울타리를 넘는 자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백 마리는 족히 넘을 말들이 초지를 향해 달려왔다. 말무리들의 옆에는 충실한 개가 한 마리가 따랐고 맨 뒤에서 목동이 말을 몰며 상류 쪽으로 몰아갔다. 


  안장도 고삐도 없는 말들이었다. 넓은 초지를 달리는 말들의 향연은 장관이었다. 바람을 온몸으로 가르는 몸의 강한 움직임에서 무리의 리듬감이 느껴졌다. 리듬감은 건실하고 정확한 삶의 자족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말들은 상류 쪽에 멈추어 강물을 마시고 있었다. 말발굽이 굽이치는 소리는 물이 길을 찾는 소리에 숨어들었다. 툴강은 말들에게 물을 먹이고, 강은 말을 살찌우고 말은 강 주변을 다져 물길을 튼튼하게 한다.     


  우리는 말이 지나간 초지에 발을 들였다. 다시 말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모든 사선에 직선을 그으며 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물매화를 만났다. 용케도 말발굽을 피해서 하얗게 피어 있는 물매화였다. 물매화는 산지의 볕이 잘 드는 습지에 사는 식물이다. 매우 까다로운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꽃이 아니다. 지리산같이 높은 산의 습지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꽃이었다. 가는 길이 멀어도 내 눈에 들어온 물매화와 눈 맞춤은 길어야 마땅하다.


  가까이서 본 톨강은 사나웠다. 물의 흐름이 빨랐고 깊었다. 잘못 헛발을 디디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빨려 들어갈 만큼 물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물만 보면 하고 싶은 물수제비 띄우기를 해보았다. 돌을 그대로 흡수해버리는 강물에 겁이 났다. 물의 신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들이 되돌아오기 전에 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는 길에 보았던 물매화가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초원에서 놀던 별이 미쳐 하늘에 오르지 못했다가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 마법이 풀려 하늘로 올라간 걸까? 열세 살이 된 딸은 이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지는 않지만, 엄마의 그런 말에 웃어줄 만큼의 예의는 갖췄다.   


  멀리서 한 무리의 소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캠프에 둘려진 나무 울타리는 경계의 표시가 아니라 테를지 국립공원을 함께 쓰고 있는 목축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소는 고삐에 묶여있을 때만 안전하다. 묶인 소만 키워본 나는 야생의 소를 몰아본 적이 없다. 어린 여자아이는 긴 막대기 하나로 소몰이를 하고 있다. 우리 딸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가 팔랑팔랑 뛰어다니며 소몰이를 한다. 어릴 때 집에서 묶인 소를 키울 때도 뒷발이 무서워 소 뒤로는 가지 않았다. 소는 정면으로만 봤다. 정면에서 바로 본 소의 눈은 아름답다. 저물녘 소의 눈에는 노을 속 개밥바라기별이 껌뻑껌뻑 머물다 간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펼쳐지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안장도 고삐도 없이 달리는 말들의 향연과 그 모든 굽이치는 소리를 품고 있는 툴강을 만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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