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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계 Feb 07. 2024

딸의 취임식

  딸의 취임식

                                                                    

  딸이 교사가 됐다. 같은 학교에 발령받은 세 명의 신입 교사를 위해 교장선생님은 취임식을 준비한다고 부모님 모두 참석하라고 한다. 딸의 취임식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취임식은 어떻게 하는 걸까, 경험이 없는 나는 참석하는 날까지 설레었다. 

  처음 발령 소식을 듣던 날, 딸이 돌아오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딸이 근무할 학교가 궁금해서 서산에서 분당까지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학교에 찾아갔었다. 교문으로 들어서자 아치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넝쿨장미가 인상적이었는데 추운 날씨라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내 눈엔 6월의 넝쿨장미가 빨갛게 피어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학교 건물도 살펴보고 운동장도 돌아보다가 잠시 서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했다.


  막상 취임식 날이 되자 딸은 나에게 학교에 좀 일찍 와서 자기가 담임하는 반 아이들을 만나고 참석하면 좋겠다며 교실로 올라오라고 한다. 딸이 맡은 반 아이들을 만나다니, 그 아이들에게 나는 담임선생님의 엄마니까 할머니인 셈인가. 

  아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인근 떡집 아줌마의 쫄깃하고 맛있는 송편이 떠올랐다. 그래, 쑥송편과 흰송편을 준비하자, 나는 떡집 아줌마에게 특별이 아이들이 먹을 송편을 주문하였다. 스물다섯 살 딸이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교실에 있는 모습은 어떨까, 시간이 다가올수록 여간 설레는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취임식 날, 나는 남편에게 정장을 내밀고 나도 한껏 모양을 낸 뒤 떡보따리를 들고 분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선 6학년 교실, 쭈뼛거리는데 아이들이 “어서 들어오세요” 소리와 함께 박수를 친다. 복도에서 서성이던 우리 부부는 계면쩍은 얼굴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와, 박수로 환영하는데 아이들 앞에 선 우리 부부 모습이 꼭 동물원의 원숭이 같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눙쳐볼 요량으로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에 대하여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 “우리 선생님 애인 있어요?”, “보디가드가 있다고 하던데 어떤 사람이에요?”, “선생님 초등학교 때 공부 잘했나요?”, “말 잘 들었나요?”, 등등 여러 가지를 묻는다. 


  나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하여 만화광이었던 초등학교 때 딸의 모습을 들려주었고,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에게? 겨우?’ 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담임으로서 딸의 체면이 안 서겠구나 싶어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7-8위, 고등학교 때는 전교 1위였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환하게 펴지면서 ‘와! 와!’ 한다. 


  하하 호호 깔깔거리는 30명의 눈망울은 햇살에 빛나는 산골짜기 개울물보다 더 투명했고 맑았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질세라 한 마디씩 질문하는 모습은 산골짜기 물소리보다 맑았다.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딸이 수업하는 모습도 뒤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부모 앞에 선 담임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인지 열심이다. 문제를 풀 때도 답이 1번이요, 2번이요, 혹은 3번이요,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여 손을 들었고 호명된 아이들은 왜 그것을 답이라고 생각하는지 차분히 설명하였다. 담임선생님을 배려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고맙고 예쁘던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랑하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하여 실력도 갖추게 되고 체력도 배려도 갖추게 된다고 누누이 이야기를 해왔는데, 막상 아이들과 마주한 딸의 모습을 보니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다. 여간 기특하고 대견한 게 아니었다. 저 아이들을 위해서 딸은 최선을 다하는구나, 마음이 놓이기도 하였다.


  우리 부부는 교장실로 안내되어 선생님과 함께 차를 나눴다. 초록색 웃옷에 검은 스커트 차림의 교장 선생님은 생각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웠다. 움직임에서 풍겨 나오는 단아한 이미지와 매끄러운 목소리에 녹아있는 세련됨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딸이 초임교사로서  많이 배울 수 있겠구나 싶어 감사했다.


  시간이 되어 취임식장인 강당에 들어서자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앞자리에 신규 교사의 부모들이 가슴에 꽃을 달고 앉았고 그 옆으로 딸을 비롯하여 취임하는 신규 교사 세 명이 자리했다. 

  잠시 후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애국가 제창을 시작으로 취임식은 시작되었다. 새로 출발하는 세 명의 선생님, 그들의 취임사에 이어 꽃다발 증정과 교장 선생님의 축사 그리고 어린이들의 리코더 합주와 신규 교사들의 노래 답사가 이어졌다. 

  얼추 끝나갈 무렵 교장 선생님은 예정에도 없던 부모님들의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이라며 한 사람씩 올라오라고 한다. 두 번째로 우리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나가라고 했지만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관중들 앞에 서자 10년 가까이 강단에서 섰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소리가 떨려왔다. 딸이 생후 17개월일 때 위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야 했던 일이 떠오르면서 눈시울도 젖어들었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엄마 냄새가 난다고 내가 쓰던 베개를 끌어안고 잤다던 딸, 낮에는 병원에 와서 간호사가 주사바늘로 엄마를 찌른다고 출입을 막던 어린 딸 유진이. 

  죽음 앞에 서니 어떤 신이라도 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나는 엄마밖에 모르는 어린 딸을 보면서 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만이라도 살게 해달라고, 엄마 노릇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찾아 빌고 또 빌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매달렸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몰라서 애면글면 최선을 다했다. 딸이 자라면서 사랑받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키우려고 나름대로는 책도 보고 공부도 하면서 스스로 하는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딸은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할 때부터 저녁이면 숙제를 마치면 다음 날 준비물을 챙긴 책가방과 입고갈 옷을 머리맡에 가지런히 챙겨놓고 잠을 잤다. 


  그 딸이 초등학교 입학은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교육대학에 들어갔으며 미국에서 어학연수까지 마치고 돌아와 졸업하고 교사로 취임하다니, 너무나 감사하다는 나의 목소리는 떨렸고 꽃다발을 받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딸은 울었다. 나는 경황이 없어 볼 수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선생님들도 학부모들도 학생들도 위암으로 투병하며 딸을 키운 내 이야기에 모두가 울었다고 나중에 전해들었다.

 

  이런 시간이 있을 줄 알았더라면 근사한 인사말이라도 준비했을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달랑 떡보따리만 들고 올라왔다가 감정에 북받쳐 모두를 울리고 말았다. 촌스러움만 실컷 보여주고 울먹이다 내려왔지만 내겐 정말 잊을 수 없는 고맙고 감사한 날이었다.

 

  5년 시한부 삶에서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던 딸, 엄마를 엄마되게 키워준 딸이 교사의 자리에 서다니,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하고 우리 딸이 콩쥐가 되어 팥쥐엄마한테 구박받으면 어떡하나, 동동거리며 살아왔던 시간들…. 살아있음은 기적이다. 


  무엇보다도 시한부 삶을 살았던 내게 이런 영광의 날이 오다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으리라는 걸 당시에는 눈곱만큼도 터럭만큼도 짐작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때의 고난이 있었음으로 오늘의 기쁨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면서 느끼는 절대 절망의 순간은 기쁨을 잉태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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