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여행이라기엔 내가 너무 즐거워
“엄마, 여행 가자!”
대한민국 직장인 중 퇴사 후 여행 한 번 안 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시간은 많고 제약은 없으니 이때 아니면 언제 가랴. 주말보다 저렴한 평일 출발로 GO! 이왕이면 가기 힘든 유~우~럽으로! 그래서 큰 마음먹고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을 끊었다. 동행자는 나의 여행 메이트 이 여사님.
왜 패키지냐고?
나도 국내와 인근 아시아 정도는 자유 여행으로 다닌다. 그러나 유럽 같이 멀고 낯선 곳에서 일주일 이상의 장기 일정을 계획하려니, (핑계 같지만) 대문자 P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이탈리아는 언제 또 올 지 모르는데 이 기회에 여러 도시를 돌아 보고도 싶었다. 언어적 장벽과 인종 차별,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은 컸다. 노모와 함께하는 만큼 안전과 동선도 중요했다. 여행지에서도 늦은 오전에야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라, 부지런히 다니려면 강제성이 좀 필요했다. 요즘에는 No 옵션 No 쇼핑 No 팁에 자유 시간까지 고려한 상품들도 많아, 여러 모로 패키지가 효율적으로 보였다. 대신 그만큼 비용이 높아지는 건 감수해야 하지만.
왜 엄마랑 가냐고?
부모님과의 여행, 일명 효도 여행은 호불호가 크다. 부모님의 성향에 따라, 자식의 성향에 따라 해피 엔딩이거나 새드 엔딩으로 끝난다. 야심 차게 시도했다 한 번뿐인 단막극으로 막을 내리기도 한다. 검색만 해봐도 자식들의 웃픈 후기들이 주루룩이다. 오죽하면 ‘부모님 여행 10 계명’이 돌까.
사실 10여 년 전, 내가 주도해서 떠난 첫 가족 여행도 아슬아슬했다. 아버지께서 열심히 계획하고 공유할 땐 다 좋다 하시더니 막상 가서는 일정을 마구 바꾸시는 것이다. 게다가 그늘 한 점 없는 한여름 경주의 뙤약볕을 피해 시원한 카페에서 좀 쉬자는 것도 반대. 지금은 종종 가시지만, 그 당시에는 도시 젊은이들(?)처럼 카페에 앉아 몇 천 원이나 하는 밥만큼 비싼(!) 음료를 마시며 수다로 시간을 보내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종국에는 4:1로 나뉘는 환장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 뒤로 회복되기까지 한참 동안 아버지와 떠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빠도 이때 많이 느끼셨는지 두 번째 여행부턴 달라지셨고 서로 맞춰가는 해피 엔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때?” 물어보면 그저 다 좋다고 하신다. 내가 성질을 내면 냈지, 무던하신 성격으로 다 포용해 주셔서 친구보다 편했다. 엄마와는 괜찮을 것 같아 해외여행도 여동생과 셋이서 대만으로, 홍콩으로 떠났다. 첫 해외여행에 들뜨신 모습, 공항에서 설레어하시는 모습, 일찍부터 조식 먹을 준비하시는 모습, 처음 본 음식도 우리보다 잘 드시는 모습, 이국적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시는 모습, 어떻게든 사진을 잘 찍어주려 노력하시는 모습, 투어를 열심히 쫓아다니시는 모습... 여행지에서 만난 엄마는 우리 엄마지만 너어무 귀엽고 애틋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 좋은 데 갈 땐 가급적 엄마랑 가기로 마음먹었다. 무릎이 점점 안 좋아지셔서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탓도 있다. 무엇보다 엄마랑은 스케줄 조정이 필요 없다. 결정하면 가는 거야~!
그래서 이탈리아 가보니
말해 뭐 해 너무 좋지! 5월의 이탈리아는 날씨가 환상적이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풍경만으로 소위 “돈값” 했다. 주머니는 탈탈 털렸을지언정 언제 또 이탈리아를 와보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이 땅을 밟았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세계사에서나 배우던 걸 두 눈으로 본 것에 만족했다. 가이드 분들의 친절한 설명 덕에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 슬림한 몸매에 슈트를 풀 장착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대했던 잘생긴 젊은 남자는 없...)
최악이야. 인종차별 적잖이 있었다. 현지인들을 직접 마주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면, 하나부터 열까지 대면해야 했을 땐 어땠을까 싶었다. 인종 차별이 아닌 만민 평등의 불친절일 수도 있지만. 로마에서는 3인 1조의 소매치기들이 지나며 가방을 일일이 스캔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여행 내내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하느라 노이로제에 걸릴 뻔했다.
내게 이탈리아는 좋음과 아쉬움의 격차가 큰 곳이었다. 명성만큼 멋졌지만 기대보다 못했다. 그래도 내 생애 또 올까 싶은 순간들이었다. 엄마의 여권에 도장 하나 더 찍어준 것도 뿌듯했고, 함께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적립한 것도 좋았다. 이탈리아에 와서라기보다 엄마와 함께여서 즐거웠던 것도 같다.
패키지여행은 인솔자와 다른 사람들에 따라 복불복이라는 말이 맞았다. 다만 우린 우리끼리 노느라 바빠서 남들 일은 소소한 이벤트로 넘어갈 수 있었다. 출발 전날밤 이탈리아는 변기 커버가 없다는 글을 보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었는데, 다행히 화장실도 괜찮은 곳으로 잘 인도해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잘한 선택 같았다.
엄마와 함께 간 유럽 패키지여행, 감성은 없어도 제법 낭만 있었다. 다음은 어느 나라 도장을 쾅 박아 볼까~ 생각만으로도 콧바람 살랑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