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힐링하고 충전하고 벌크 업하고
무릇 퇴사를 했으니 고향 부모님 댁에도 다녀오는 게 인지상정. 몇 가지 잔일을 처리한 뒤, 보따리 싸들고 내려갔다. 돌아오는 기차표 없이 편도만으로 ktx를 끊은 게 몇 년 만인지. 타향살이의 고충 하나는 고향집을 다녀오기에 주말 1박 2일은 너무 짧다는 거다. 그래서 보통은 최소 2박 3일이 보장될 때나 찾아뵈었는데, 그래봤자 최대는 일주일 정도였으니 흔치 않은 딸내미의 장기 체류였다. 그렇게 고향집에서 기약 없는 잠만보 일상이 시작됐다. 퇴사 직후 서울에 있을 때 절반 정도 체감했다면 부모님 댁에 오고 나서야 이백프로 실감이 났다. 오늘 할 일 0의 삶.
첫 일주일 동안은 옴짝 달짝 않고 눈도 거의 뜨지 않았던 것 같다. 삼시 세끼 때맞춰 알람해 주시면 일어나 밥 먹고 누워 TV 보고 수다 떨다 금세 낮잠 자고 밤잠 자기 일쑤였다.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다 큰 딸이 오랜만에 내려와 손하나 까딱 않고 퍼질러 자기만 하다니, 특히나 새벽같이 일어나시는 아빠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눈치가 좀 보이려던 참이었다.
“더 자. 푹 자. 계속 자.”
평소에는 잠 많다고 타박이었는데? 고도의 놀림인가? 비몽사몽 잠에서 깨려 애쓰고 있으면 조용히 방문까지 닫아 주신다. ‘혹시 내가 불편한가?’ 얼토당토않은 의심(?)도 살짝 해봤다. 잠이 안 깬다고 꿍얼거리니, 그동안 일하느라 힘들었어서 그렇단다.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근무하신 아빠 앞에서 내 근속연수는 고작 몇 년일 텐데. 괜히 철없이 느껴져 더 앓는 소리를 해댔다. 징그러울 만큼 커버린 찡찡이의 등장이었다. 여하튼 부모님의 배려 속에 몰아친 폭렬적인 수면 후, 컨디션은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였다.
조잘조잘, 엄마도 나도 수다 삼매경이다. 깎아주는 복숭아를 날름날름 집어 먹으며 열 마디. 김밥을 말기가 무섭게 족족 주워 먹으며 스무 마디. 촉새가 따로 없다. 시시콜콜 시답잖은 얘기들이 엄마 앞에서 가래떡처럼 쭉쭉 뽑혀 나왔다. 재미있는지 없는지, TMI인지 아닌지 눈치 볼 필요는 없었다. 엄마도 아빠랑만 있다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겨 덜 심심한 모양이다. 그렇게 안온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물었다.
“나 계속 집에 있을까?”
“마음대로 해.”
“그러다 취직 안 하면 어쩌려고.”
“너가 쉴 만큼 쉬었다 싶으면 하겠지.”
천년만년 놀기만 하면 어쩌려고 말리기는커녕 쿨하시다. 말 한마디로 현실의 불안을 날려 주신다. 이다음 또 한 발 알아서 잘 내딛으리라 기꺼이 믿어 주신다. 여기서 역설적이게도 내가 다시 돌아가 취직을 할 것이라는 전제가 느껴진다. 몇 번 반복된 자식의 퇴사를 겪으면서 생긴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알고는 있다. 난 어쩔 수 없는 K-장녀이고, 앞으로도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갈 것이다. 나의 터전은 고향을 떠난 지 오래다. 나의 밥벌이에 대해서는커녕 서울살이조차 잘 알지 못하시는 부모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건 딱히 없다. 그렇기에 그저 “믿는다”는 말로 신뢰와 응원을 보내주실 뿐이다. 때로는 그 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 이상 의존할 수만은 없어진 나의 어버이에게 그래도 감사하다. 내가 나를 채찍질할 때, 세상이 조여올 때 작은 틈새가 되어 주시니.
아침 먹고 사과 먹고, 점심 먹고 전 부쳐 먹고, 저녁 먹고 옥수수 먹고. 느껴진다. 온몸 구석구석 살이 차오르는 것이. 후한 시골 인심 무섭게 여기저기서 주시는 것도 많지, 원체 먹을 게 많은데 좀 떨어질만하면 생기고 또 생긴다. 배가 부른데 맛은 또 너무 있어서 탈이다. 평소 시큰둥했던 음식도 왜 이리 손이 가는지! 마음까지 채워주는 게 집밥이라지만 이토록 착실하게 플러스될 필요는 없는데... 쪘다 한들 탓할 사람도 없다 (다 내가 먹었는데). 몇 주 동안 차곡차곡 불은 체중을 한 번 인식하자 신경이 좀 쓰였다. 그런데 저울의 숫자와 거울 속 실루엣과 타인의 인정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검사하지 않아도 T임을 알 수 있는 냉정한 그분들이 항상 하시는 말.
“안 쪘어. 날씬해. 전엔 너무 말랐지.”
내 인생에 그렇게 마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누가 들을까 무섭다. 자기 객관적 시각에도, 다수결의 의견에도 반대하며 꿋꿋이 먹을 걸 입에 넣어 주신다. 라떼 한 잔이 아침이던 나에게 건네는 국만 한 사발이다. 먹는 사람은 셋인데 기다리는 음식은 곱절이다. 적게 달라고 하여도 양의 차이가 크게 없는 건 왜일까?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현실 고증을 잘했네. 헛배부를 틈 없이 먹다 보면 웃음이 나는 게 이것이 사랑이려니 한다.
아, 그냥 찰싹 붙어 캥거루족이나 되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