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편이 아프다

내 마음 속 앙금

by Asset엄마

남편의 휴직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그는 더욱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 함께 보내는 많은 시간이 사실 매번 즐겁지만은 않다는 게 좀 서글프다. 남편과 함께 지나온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동안 내 입장에서는 그 순간에 풀지 못하고 마음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미움과 원망들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와서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내 얼굴의 침 뱉기라도 오늘은 한번 시원하게 남편 험담 한번 하고 넘어가고 싶다.


코 묻은 돈

세 번의 임신과 출산,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데에는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정말 힘들어서 남편에게 힘들다고 여러 번 얘기했었다. 나의 징징거림이 참기 힘들었는지 남편은, “코 묻은 돈 벌면서,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라” 라고 말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답변이였고, 난 펀치를 맞은 기분이였다. 그 날 이후로 난 남편에게 힘들단 말을 하지 않았다.

최근 남편에게 나직히 말했다. “내가 벌어 온 코 묻은 돈으로 생활하니 어때?”

나에겐 큰 상처였으나, 그는 씩 웃으며,

“기억 나. 코 묻은 돈.”


답정너

주말에 가끔 남편은 묻는다.

“회 먹고 싶지 않아?”

“평양 냉면은 어때?”

“대게 쪄 먹을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도 없다. 다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 뿐이다. 물어보는 이유는 본인이 드시고 싶어서! 나는 자포자기로 말한다, “당신 먹고싶은 거 먹어. 난 상관없어”

아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물어봤더니, 딸이 째려보며 답했다.

“아빠는 어차피 아빠 좋아하는 거 고를 거면서 왜 물어봐요?”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와이프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남편은 통상 자기의 실수는 그럴 수 있다고 매우 너그럽게 얘기하지만, 내가 한 실수에 대해서는 심하게 비난한다.

아이가 초등 입학 때 사준 시계모양 핸드폰이 고장이 났다. 이 참에 제대로 된 키즈폰으로 바꿔주자고 하였다.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바꾸자하니, 인터넷 개통이 더 저렴하다고 굳이 온라인으로 구매 하겠다하여 일임하였다. 우리가 아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어린이 위치 추적 기능인데, 실버폰을 구매하고 개통하여 위치 추적이 안된단다. 결국 몇날 며칠 대리점에 아쉬운 소리를 하여, 위치 추적이 가능한 키즈폰으로 교체 후 재개통 하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너는 어떻게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해? 생각해보니 네가 이런 실수를 했다면 나는 너한테 이미 백마디는 했을텐데”

“당신 스스로 이불킥 하고 있고, 수습하느라 며칠 고생했는데 내가 보태봤자 바뀌는 거 없쟎아”

그 후 수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본인의 실수는 수습 가능한 것이라 괜찮다고 다독이며, 내가 가격 비교 안해보고 500원이라도 더 비싼 물건을 사면 호구라고 나를 책망한다. 사람 안 바뀐다.


꼰대를 영어로

남편은 나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잔소리를 해댄다.

“미세먼지 나쁘다, 마스크 쓰고 가라”

“일회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된다, 환경 호르몬 나온다”

“나갈 때 방 전등은 꼭 끄고 나가라”

“집에 들어왔으면 손부터 씻어라”

“자기 전에 양치해라”

누가 보면 우리가 너무 터무니없게 행동하는 줄 알지만, 나름 개인 위생수칙과 깔끔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느 주말 저녁식사 시간에 아이들끼리 키득거리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젓가락이 영어로 뭐야?”, “Chopsticks”

“김이 영어로 뭐게?”, “ Seaweed”

“그런데 우리 나라는 김이랑 미역이랑 다시마랑 다른데, 영어는 똑같아”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 누구인지 모르게,

“그럼 꼰대는 영어로 뭐야?” 라는 질문을 던졌고, 셋은 동시에 같은 단어를 외쳤다.

“MY FATHER!”

그렇다, 영어로 꼰대는 내 아빠다! 잊지 말자.

keyword
이전 08화남편이 아프다